조영길 前국방 기고로 본 ‘NLL 경제논리’ 허상

  • 입력 2007년 10월 24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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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 초대 국방부 장관을 지낸 조영길(예비역 대장) 전 장관이 23일자 본보 특별기고에서 “북한군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하면서 꽃게를 입에 담은 적은 한 번도 없다”며 NLL의 안보적 중요성을 정부가 스스로 허물었다고 주장해 파장이 일고 있다.

1990년대 말 북한에 우호적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 북한 함정의 NLL 침범 목적이 꽃게어장 확보라는 ‘희한한 얘기’가 우리 내부에서 슬며시 흘러나왔고, 그 뒤로 NLL의 안보적 가치가 경제논리로 ‘변질’되면서 서해 공동어로수역 설정론이 집중 부각됐다는 것.

최근 ‘NLL은 영토선이 아니다’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파문을 비롯해 정부 내 NLL 흔들기 사태까지 초래된 것도 과거 10년간 일방적 대북 포용책이 빚은 안보 불감증의 결과라는 게 조 전 장관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전현직 군 소식통과 전문가들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주장이라고 밝혔다.

▽‘도발 아닌 꽃게잡이 단순 월선’=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한창이던 1999년 6월 연평해전 직전 북한 경비정이 노골적으로 영해를 계속 침범했지만 군 당국은 사태 초기 의도적 영해 침범이 아니라 북한의 꽃게잡이 어선을 보호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단순 월선’이라고 의미를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며칠 뒤 북한 경비정의 선제공격에 맞서 우리 해군 함정이 선체로 밀어내는 등 충돌이 빚어지자 그제야 ‘영해 침범’, ‘도발’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NLL 무력화를 노린 북한의 치밀한 계획적 도발이 분명했지만, 정부 내에선 서해상 군사적 갈등을 경제적 관점에서 풀어 보자는 ‘엉뚱한’ 의견이 튀어나왔다. 정부는 남북 장관급회담 등을 통해 서해 공동어로수역 설정을 북한에 본격 제기하기 시작했다.

NLL의 안보적 가치가 경제 논리에 급속히 가려지면서 군 당국의 NLL 대응도 눈에 띄게 무뎌져 갔다.

이후 합동참모본부는 북한 경비정이 NLL을 침범할 때마다 북한 어선이나 중국 어선의 꽃게잡이 조업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단순 월선이라는 답변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특히 2002년 6월 서해교전 발발 10여 일 전 북한 경비정의 잇단 NLL 침범이 예사롭지 않다고 언론이 경고했지만 합참은 “꽃게잡이 철을 맞아 북한 어선의 남하를 단속하다 단순 침범한 것”이라고 넘겼고, 그 결과 북한군의 기습으로 해군 장병 6명이 NLL을 지키다 전사하는 참화를 초래했다.

대북정보 분야 군 소식통은 “당시 군 내에서 햇볕정책을 의식해 가급적 북한의 위협을 부각시키지 않고 긴장을 조성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널리 퍼져 있었다”며 “북한 경비정의 의도적 침범을 단순 월선으로 판단한 것도 그 영향이 컸다”고 털어놓았다.

▽“대북 포용정책의 부작용”=두 차례의 교전은 실질적 해상경계선이자 영토 개념인 NLL을 침범한 북한의 군사적 기습 도발이 근본 원인이었지만 정부 내에선 꽃게잡이를 둘러싼 남북 간 우발적 군사 충돌을 막기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해야 한다는 논리가 더욱 득세했다.

서해교전 발발 1년 뒤인 2003년 6월 일부 정치권과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서해 공동어로수역 설정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면서 NLL의 안보적 가치가 계속 폄훼되자 정부 내에서 견제의 움직임도 나타났다.

당시 조영길 국방부 장관은 국회 대정부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군사적 신뢰 조치가 전혀 구축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는 것은 오히려 충돌의 위협을 증대시킬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 반대 의견을 분명히 밝혔다.

당시 김희상 청와대 국방보좌관도 “북한이 NLL을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공동어로수역 설정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치에도 맞지 않는다. 오히려 말썽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2005년 당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면담한 자리에서 서해상 남북 공동어로수역 설치를 위한 수산회담 개최에 합의했다. 같은 해 7월 남북은 수산실무협력회의를 열어 공동어로수역 설정에 최종 합의하고 공동어로의 수역 및 시기 문제는 군사당국 회담으로 넘겼다.

이후로 NLL은 ‘안보 생명선’에서 남북 간 우발적 충돌을 초래하는 ‘애물단지’이자 대북 포용정책의 ‘최대 걸림돌’로 전락했고, 대북 경협의 대상으로 퇴색했다는 게 많은 전문가의 공통된 지적이다.

현 정부와 과거 정부의 핵심 대북 정보통이었던 한 관계자는 “결국 북한군의 NLL 무력화 도발에 대해 비난은커녕 정부 스스로 꽃게잡이라는 명분으로 ‘면죄부’를 준 셈”이라며 ”NLL의 안보적 중요성이 이 지경까지 훼손된 것은 10년간의 일방적 대북 포용정책이 빚은 부작용”이라고 말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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