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통일 “北에 쌀-비료 제공 합의” 발표 5분 뒤 번복

  • 입력 2007년 3월 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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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차 남북 장관급회담 마지막 날인 2일 평양 고려호텔 회담장에서 남측 수석대표인 이재정 통일부 장관(왼쪽에서 두 번째)과 북측 수석대표인 권호웅 내각책임참사가 공동보도문을 교환한 뒤 악수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제20차 남북 장관급회담 마지막 날인 2일 평양 고려호텔 회담장에서 남측 수석대표인 이재정 통일부 장관(왼쪽에서 두 번째)과 북측 수석대표인 권호웅 내각책임참사가 공동보도문을 교환한 뒤 악수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2일 평양에서 폐막한 제20차 남북 장관급회담의 결과는 이산가족 상봉행사 재개 합의 등을 통해 지난해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단절됐던 남북관계를 이전 상태로 복원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6자회담 2·13합의(북핵 폐기에 관한 2005년 9·19공동성명의 초기 이행조치에 관한 합의)대로 비핵화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남북관계는 다시 경색 국면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

▽비핵화 조치에 연계된 대북 지원=남북은 이번 회담에서 예년 수준의 대북 쌀 차관 40만 t 제공과 비료 30만 t 지원에 합의했다.

정부는 북측이 2·13합의를 얼마나 성실히 이행하는지 지켜본 뒤 쌀 차관 지원 여부를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북측이 4월 13일까지 평북 영변의 5MW 원자로 등 핵 시설의 폐쇄(shutdown)를 제대로 이행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검증, 신고 대상 핵 프로그램 목록 협의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게 조건이다.

그러나 남측 수석대표인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2일 회담이 끝난 뒤 남측으로 돌아와 남북회담사무국 브리핑룸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북측이 2·13합의를 지키지 않아도 식량을 지원하느냐”는 질문에 “그건 그때 가서 결정할 일”이라며 다분히 북측을 의식한 답변을 했다.

또 이 장관은 회견에서 처음엔 “북측과 쌀 차관 40만 t 제공과 비료 30만 t 지원에 합의했다”고 밝혔다가 5분 뒤 이를 번복하는 해프닝을 빚어 남북 정상회담 등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이면합의’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이 장관은 회견을 마친 뒤 다시 브리핑룸을 찾아와 “대북 지원 문제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남북교류협력추진위원회도 거쳐야 하고 국회에도 보고해야 한다. 쌀의 경우 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추위), 비료는 남북 적십자회담에서 최종 결정한다”고 말을 바꿨다.

4월 18일 열릴 경추위에서 올해분 쌀 차관 40만 t을 모두 제공하기로 할 경우 북측이 2·13합의에서 4월 13일 이후 이행하기로 한 핵 시설 불능화(disablement) 조치를 끌어낼 지렛대가 약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북 지원에 연계된 이산가족 대면상봉=남측은 이번 회담 초반 이산가족 대면상봉 행사를 4월에 실시하자고 요구했다.

그러나 북측은 쌀 차관 제공 문제를 논의하게 될 경추위가 끝난 뒤 5월 초에 이산가족 대면상봉을 실시하자고 주장해 관철했다. 만약 비핵화 조치 불이행으로 쌀 차관 제공이 안 될 경우 이산가족 대면상봉도 성사될 수 없다는 게 북측의 복안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은 지난해 7월 미사일 발사로 남측의 대북 쌀 차관 제공이 중단되자 같은 해 8월 15일경 열기로 예정됐던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취소한 바 있다.

남북은 또 이번 회담에서 올 상반기 경의선 및 동해선 열차 시험운행을 재개하기로 했지만 이를 성사시키는 데 필수인 군사 분야 회담 일정엔 합의하지 못했다. 북측은 지난해 5월 열차 시험운행을 하루 앞두고 ‘군사보장 조치가 마련되지 않았다’며 일방적으로 시험운행을 취소했다.

이번 회담에서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를 풀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전혀 논의하지 못하고 4월 10일부터 금강산에서 열리는 적십자회담으로 미뤄 놓은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평양=공동취재단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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