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동해→평화海”…참모회의 아이디어를 정상회담서 언급

  • 입력 2007년 1월 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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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왼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해 11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 대화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노무현 대통령(왼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해 11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 대화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 동해 명칭을 ‘평화의 바다’ 등으로 바꾸자고 말한 사실이 8일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청와대는 즉각 ”공식적인 제안이 아니었다”며 불끄기에 나섰지만 “충분한 여론 수렴 없이 나온 즉흥 발언”이라는 비판 여론이 제기되고 있다.

▽“아이디어 차원에서 말한 것”=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은 이날 청와대브리핑에 올린 글에서 “노 대통령의 ‘평화의 바다’ 발언은 일본이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과감한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아이디어 차원에서 하나의 사례로 제시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보정책실은 “정부는 일본에 동해를 ‘평화의 바다’로 하자고 제의하지 않았다”며 “당연히 추가 협의나 논의가 진행된 바도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청와대의 설명은 정상회담을 둘러싼 외교적 관례와 배치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설사 정상들 사이의 비공개 회담이라 할지라도 국가원수인 대통령의 언급은 상대에겐 중요한 문제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본 지지통신이 이날 일본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아베 총리는 노 대통령의 ‘제안’을 즉석에서 거부했다”고 보도한 것도 청와대와의 시각차를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다. 청와대는 “공식 제안이 아니라 아이디어”라고 해명했지만 일본 정부는 “하나의 제안”으로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김호섭 중앙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정상회담에서 국가원수의 발언은 개인적 생각이 아니라 국가를 대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며 “역사문제와 같은 민감한 사항을 국내에서처럼 즉흥적으로 발언하는 것은 외교적 혼선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상회담에서 대통령이 하는 한마디가 갖는 무게를 감안할 때 실무 외교라인과 사전에 충분한 조율을 거쳤는지도 논란이다. 통상 정상회담에 앞서 양국의 실무 라인은 의제는 물론 회담 후 발표 내용과 형식까지도 사전에 협의하기 때문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노 대통령이 실무 외교라인과 사전 협의를 했느냐는 질문에 “협의를 했는지, 안 했는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다”며 “그동안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그런 아이디어가 나왔고 교감을 했다”라고 설명했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도 이날 브리핑을 통해 “동해 명칭의 변경은 1990년대부터 아이디어 차원에서 제기됐던 문제로 정상회담 전에는 한일관계 전반에 대한 여러 보고서를 제출해 포괄적으로 검토하는 만큼 사전 협의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당국자는 외교부 차원에서 청와대에 동해 명칭 변경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했는지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동해 문제 등 한일 간 역사문제에 대해 수시로 보고했기 때문에 직접 협의하지 않았어도 협의했다고 볼 수 있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대통령 발언의 배경=동해 명칭 변경은 일부 국내 학자가 한일 간 역사문제 해결을 위해 제기해 왔던 방안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국제사회에서 90% 이상이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 ‘동해’를 고집하기보다는 일본이 받아들일 수 있는 ‘근해(近海)’ 등 중립적인 명칭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다. 일본에서도 일부 학자가 동해를 ‘청해(靑海)’로 부르자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방안은 동해 표기의 정당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 때문에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도 검토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노 대통령의 발언이 특유의 ‘즉흥적인 발언’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절제된 언어를 구사해야 할 외교 현장, 더욱이 정상회담장에서 국내 현장처럼 즉흥 발언을 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다.

또 노 대통령의 발언 배경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시절 얼어붙은 한일관계를 아베 총리 체제에서 복원시켜 임기 말 외교적 성과로 삼으려 한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는 관측도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측이 일본해 표기를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동해의 명칭 변경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은 그동안의 정부 방침에서 후퇴하는 것으로 비칠 소지가 있다. 특히 이달 중순 일본 도쿄(東京)에서 재개될 제7차 배타적경제수역(EEZ) 회담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은 일본이 기존의 방침을 고수하면 한일관계가 풀리지 않기 때문에 과감하게 새로운 발상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며 “외교적 성과를 노렸다는 비판은 터무니없다”고 반박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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