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신고식 치르는 반기문 유엔총장

  • 입력 2007년 1월 4일 18시 53분


코멘트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며 전용 방탄차량을 물리치고 걸어서 첫 출근을 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공식 업무가 시작되기 전부터 시작된 미국 언론의 다양한 '견제구'가 쉼 없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한국인 사무총장으로 첫 업무를 시작한 2일에는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사형 집행 문제가 종일 반 총장을 시달리게 했다.

반 총장은 "후세인 전 대통령 처형은 각국이 법에 따라 정하는 문제이며 유엔 회원국은 국제 인권법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후세인 전 대통령에 의한 희생자를 잊지 말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주요 미국 언론은 반 총장의 발언을 사형옹호 입장으로 규정하고 '유엔의 입장이 달라진 것이냐'며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개·보수 공사로 사무총장 관저가 아닌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지내야 하는 사정도 미 언론의 도마에 올랐다. 맨해튼 동쪽 '서턴 플레이스(Sutton Place)'의 사무총장 관저는 1950년대 이후부터 사용해 너무 낡았기 때문에 450만 달러를 들여 대대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뉴욕타임스는 반 총장이 수단 다르푸르 사태와 중동지역 분쟁 현안들을 다루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아직 관저에도 입주하지 못했다고 비꼬았다.

반 총장이 언론을 대하는 태도도 도마에 올랐다.

지난해 12월 25일 미국 abc 방송에 출연한 반 총장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불법인지를 묻는 진행자에게 즉답을 피해 "당신은 원하지 않는 답은 안 하는군요. 왜 당신이 '미끄러운 뱀장어'라고 불리는 지 알 수 있겠소"라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그가 국제무대에서 얻은 첫 별명인 '미끄러운 뱀장어(slippery eel)'는 사실 한국 언론이 붙였던 '기름장어(油鰻)'라는 호칭에서 비롯된 것.

미국 언론에서 나오는 다양한 '반 총장 떠보기'는 이라크 문제와 후세인 전 대통령 사형 문제를 유엔에 떠넘기고 싶어하는 미국과 미국 언론의 태도가 반영된 인상도 없지는 않다. 한편으로는 한 국가의 외교사령탑에서 생각과 문화가 다양한 세계를 이끄는 외교사령탑으로 변신하는 통과의례가 간단치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