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보다 친구 변심이 더 두렵다” 꼬리 감춘 김정일

  • 입력 2006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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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론 평온북한의 핵실험 발표로 국제사회는 벌집 쑤신 듯한 상황이지만 정작 평양 시내는 평온하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11일 한복 차림의 여인이 만수대광장에 있는 김일성 주석을 찬양하는 조형물에 헌화하고 있다. 평양=교도 연합뉴스
겉으론 평온
북한의 핵실험 발표로 국제사회는 벌집 쑤신 듯한 상황이지만 정작 평양 시내는 평온하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11일 한복 차림의 여인이 만수대광장에 있는 김일성 주석을 찬양하는 조형물에 헌화하고 있다. 평양=교도 연합뉴스
핵실험으로 국제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북한이 정작 일을 저지르고는 너무나 조용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정이 포착되지 않는 것은 자주 보던 일이지만 북한 관영 매체들까지 침묵을 지키는 것은 기괴하기까지 하다. 중대한 목표를 달성했다면서도 침묵에 빠져 있는 북한의 속사정은 무엇일까.

○ 김정일, 왜 위기 상황이면 사라지나

국제사회를 놀라게 한 뒤 ‘장기 은둔’하는 것은 김 위원장의 상투적 수법이다. 과거에도 늘 그랬다.

7월 5일 미사일 발사 직후 공개 석상에서 모습을 감춘 김 위원장은 40일 만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4월에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자신을 ‘폭군’으로 지칭하며 북핵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려고 하자 21일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2003년 2월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한 뒤 다음 달 이라크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50일간이나 숨어 버렸다. 그해 9월 1차 베이징(北京) 6자회담이 성과 없이 끝났을 때도 42일 동안 은둔을 선택했다. 2001년 9·11테러 발발 직후부터 일종의 관행처럼 굳어진 행태다.

이는 김 위원장의 신변 불안감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북한에 대해 강대국들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에는 타협, 제재, 군사적 공격이라는 시나리오 외에 암살이라는 극단적인 처방도 있다. 앞의 3가지 시나리오가 모두 여의치 않을 경우에 특히 ‘매력적인’ 대안이다.

암살에 성공하면 핵 문제부터 시작해 각종 골치 아픈 북한의 여러 문제가 예상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은 신변 불안을 가장 큰 위험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국제사회와의 관계가 원활할 때는 김 위원장의 국내 현지 지도도 활발해진다. 역설적으로 그가 외부의 암살 가능성을 두려워한다는 증거이다.

김 위원장을 가장 제거하고 싶은 국가는 당연히 미국일 것이다. 그러나 암살 수행 능력으로 따지면 이른바 혈맹국인 중국이 가장 위험하다. 중국으로서도 북한 수뇌를 친중(親中) 인사로 바꿔 버리면 통제가 쉽지 않은 큰 골칫덩어리를 없앨 수 있다.

오래전부터 중국에서는 ‘김정일 포기설’이 공공연하게 나왔다. 평양의 중국대사관이 미래를 대비해 북한 내 인재들의 자료가 담긴 방대한 파일을 관리하고 있다는 설도 나돈다.

1992년에 발생한 일명 ‘프룬제 군사아카데미사건’은 김 위원장이 형제 국가의 변심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가를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다.

옛 소련이 붕괴하며 문란해진 틈을 타 김 위원장은 국가안보위원회(KGB) 동아시아담당 요원에게서 ‘북한 내 소련 포섭자 명단’을 사들인 뒤 이를 빌미로 소련 유학파를 거의 모두 숙청했다. 고위 장성 및 군관 700여 명과 수천 명의 소련 유학파, 그들의 가족까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정작 KGB 명단에는 몇 명만 올라 있었다.

북한에서 중국계의 청산은 아직 이뤄진 적이 없다. 중국과의 각별한 관계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탓이다. 그러나 중국이 김정일 정권 교체라는 카드를 선택한다면 그 순간부터 ‘방아쇠를 누가 먼저 당기느냐’의 시간 싸움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김 위원장도 중국을 버리는 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

몸을 숨긴 김 위원장이 국제사회의 반응보다 중국의 고뇌와 변심을 더 예의 주시할 가능성이 충분한 이유다.

○ 북한 매체는 왜 조용할까

온 세계가 떠들썩해도 북한 관영 매체는 핵실험에 별 관심이 없다는 표정이다.

조선중앙TV는 핵실험 당일에만 관련 사실을 뉴스 보도를 통해 발표했다. 노동신문은 10일 3면에 성명 전문만을 간단히 실었다. 민주조선은 1면 하단에, ‘청년전위’는 4면에 실어 크게 다른 점이 없다. 11일에는 핵실험을 언급한 방송과 신문이 아예 전무하다.

1998년 8월 대포동 1호 발사 때와는 너무나 다르다. 당시에는 발사대에서 소위 ‘인공위성’이 발사되는 화면이 조선중앙TV에 반복적으로 방영됐고 방송원의 격앙된 목소리는 며칠 동안 이어졌다.

북한은 노동당이 모든 언론을 통제한다. 핵실험 성공은 미사일 발사 성공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선전 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당 지도부가 왜 이런 호재를 이용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핵실험을 거듭 보도해 봤자 득보다 실이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발등에 떨어진 불은 핵실험 여파에 따른 국제사회의 식량 지원 중단이다. 7월 수해로 가뜩이나 작황이 안 좋은 데다 식량을 지원하겠다는 나라도 없다. 내년 봄쯤이면 대량 아사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핵실험 때문에 굶어 죽는다”는 원성의 화살을 피할 길이 무엇인지 벌써부터 고심거리일 것이다. 이 경우 핵실험을 거듭 자랑스럽게 보도해 봤자 역효과만 일으키게 된다.

1998년 당국이 인공위성을 발사했다고 선전했을 때도 주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미 3년간 수백만 명의 아사자를 낸 터라 모여 앉으면 “인공위성을 만들 돈이 있으면 백성이나 먹여 살릴 것이지”하며 수군댔다. 노동당 지도부가 그때 느꼈던 허탈감과 불안감을 잊었을 리 없다.

북한 매체의 침묵을 낳은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핵실험이 북한 주민들에게 요란하게 선전할 만큼 ‘자랑스럽지’ 못했을 경우이다. 몇몇 상류층을 제외하고는 전화를 꿈도 못 꾸던 1998년과는 달리 요즘에는 전화를 설치한 가정이 늘어나 웬만한 소문은 하루 이틀이면 북한 전역에 퍼진다. “유일한 미국 압박 카드였던 핵무기가 결국 실패였다”는 소식이 퍼져 나가면 북한 사회 전체가 좌절에 빠져 크게 동요할 수도 있다.

주성하 기자(김일성대 졸업·2001년 탈북)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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