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관리 “김정일은 두살짜리 히틀러” 불만 폭발

  • 입력 2006년 10월 1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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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號 어디로 북한 핵실험 다음 날인 10일 압록강 선착장에서 출항을 기다리는 북한 주민들이 중국 단둥 쪽 카메라에 잡혔다. 노동당 창건 61주년인 이날 신의주 시내에서 열린 기념행사에 참가하고 귀가하는 인근 섬 주민들로 보인다. 단둥=AFP 연합뉴스
북한號 어디로 북한 핵실험 다음 날인 10일 압록강 선착장에서 출항을 기다리는 북한 주민들이 중국 단둥 쪽 카메라에 잡혔다. 노동당 창건 61주년인 이날 신의주 시내에서 열린 기념행사에 참가하고 귀가하는 인근 섬 주민들로 보인다. 단둥=AFP 연합뉴스
《북한의 핵실험이 일으킨 지진파는 리히터 규모 4.0에도 못 미쳤지만, ‘핵무기 보유국 북한’의 탄생이 향후 동북아 안보환경에 미치는 여파는 쓰나미(지진해일)급이라는 관측이 많다. 중국과 미국, 일본도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조야(朝野)는 하루가 다르게 북한을 다시 생각해야겠다는 분위기이고, 미국은 이제 협상의 여지는 없다는 기조이다. 여기에 일본도 첨단 군사력을 갖춘 ‘보통국가로의 길’을 재촉하는 형국이다. 하루아침에 뒤바뀐 동북아 안보지형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전략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각국의 움직임을 긴급 점검한다.》

“김정일은 두 살짜리 히틀러.”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9일 중국 정부의 한 관리는 장탄식을 하며 이렇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남의 이목을 끌려는 행태는 두 살짜리 어린애에 가깝고, 상황을 헤아리지 않고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히틀러를 닮았다는 것.

‘형제국가’로 불리던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사상 최악이다. 예전엔 상상하기도 어렵던 상호 공개 비난이 이제는 대수롭지 않게 이뤄진다. ‘혈맹’이라는 단어 속에 숨어 있던 서로의 불만이 한꺼번에 터지는 듯하다.

중국이 더 걱정하는 것은 앞으로다. 사태가 호전되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대혁명 때보다 더 최악=“북한은 사태를 더 악화시키지 말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9일 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밝힌 대북(對北) 경고 메시지다. 이날 오후 나온 중국 외교부 비난성명에 이은 공개적 경고다.

중국 외교 전문가들은 “마치 북한을 적성국 대하듯 한 이런 비난 수위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립된 이래 가장 강도 높은 비난”이라고 입을 모은다.

1960년대 중반 문화대혁명 때도 형제국가인 북한을 향해 이런 공개적이고 강도 높은 비난은 없었다. 당시 중국은 사회주의 노선을 놓고 북한과의 갈등이 깊어지자 홍위병을 내세워 김일성을 ‘대(大)부르주아지, 흐루쇼프(흐루시초프)의 앞잡이’라고 비난했다. 중국 정부는 당시 김일성 선집만 읽어도 감옥에 처넣을 정도로 김일성을 싫어했지만 공개 비난은 끝내 하지 않았다.

중국의 태도 변화에 북한은 맞대결 자세를 보이고 있다. 왕광야(王光亞) 유엔 주재 중국 대사가 북한의 핵실험 선언(3일) 직후인 5일 “나쁜 행동을 하는 국가들은 어느 누구도 보호해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자 북한은 “누가 누구를 보호한다는 거냐”며 크게 반발했다.

중국 외교부 산하 국제문제연구소 진린보(晉林波) 교수는 “중국과 북한의 갈등이 불거진 적이 적지 않았지만 이번처럼 표면화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며 “북한의 핵실험으로 양국관계가 최악의 상태”라고 말했다.

▽앞으로가 더 문제=중국 정부가 더욱 걱정하는 것은 현재보다 앞으로다. 군사적 제재도 가능한 결의안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되더라도 중국은 서방국가의 압력에 못 이겨 결국 제재에 동의할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유엔에서 결의안이 통과되면 중국은 현재와 달리 대북한 경제 원조를 상당 부분 축소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양국 관계는 더욱 악화될 게 불 보듯 뻔하다.

베이징(北京)의 한 북한 관리는 10일 “미국이 대화를 외면한 채 위협을 계속한다면 추가 핵실험은 물론 핵탄두를 미사일에 장착하는 단계까지 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론 중국의 핵 전문가들은 이런 경고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고 있다. 핵탄두를 개발하는 것보다 배나 어려운 게 미사일에 장착하는 단계로 이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 중국이 1964년 10월 핵실험에 성공했지만 핵탄두를 장착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러나 중국은 설령 사태가 이렇게까지 발전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중국과 북한이 완전히 등을 돌리는 사태로 발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북한이 끝내 핵무기 보유를 고집한다면 이는 한반도 비핵화와 안정이라는 중국의 계획과 정면으로 부닥치기 때문이다.

▽‘최악’ 대비 이미 시작=9일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자 북한과 인접한 중국 인민해방군 부대 장병들은 모두 휴가를 취소하고 비상경계에 들어갔다.

홍콩의 원후이(文匯)보에 따르면 이날 북한 접경지역의 모든 군부대에 긴급 소집령이 내려졌으며, 중국 동북지방을 관할하는 선양(瀋陽)군구의 현지 무장부대는 핵 방사능 유출에 대비한 화생방 훈련을 집중 실시했다.

중국과 북한의 관계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중국이 이미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대비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최악의 사태는 북한이 갑작스레 붕괴하는 것과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끝까지 핵을 고집할 경우 이런 상황이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일부 학자는 전면적인 경제 원조의 중단만으로도 북한의 체제가 흔들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올해 7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이후 중국이 북한과의 접경지역에 인민해방군을 대폭 증강하고 핵무기가 실제로 사용됐을 때를 대비한 화생방 군사훈련을 실시한 것은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한 대비 차원으로 풀이되고 있다.

학계에서는 이미 ‘김정일 포기설’과 ‘북한의 조기 붕괴설’처럼 예전엔 입에 담기조차 꺼렸던 말들이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중국 공산당 중앙당학교의 조호길 교수는 “현재 전문가와 학자들 사이에서도 북한의 핵실험 사태를 어떻게 대처하는 게 가장 좋을지 의견이 분분한 상태”라며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이전과 달리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태로 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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