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3000만원 넘으면 결국 유리지갑 털겠다는 말”

  • 입력 2006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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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급생활자들이 분노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23일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에서 “혹시 세금을 더 올리더라도 근로소득세는 상위 20%가 세금의 90%를 내고 있기 때문에 나머지는 별로 손해 볼 것이 없다”고 발언했기 때문이다.

2004년을 기준으로 연봉이 3000만∼4000만 원만 되면 ‘상위 20%’에 포함된다. 노 대통령의 발언대로라면 이처럼 생활이 ‘빠듯한’ 근로자에게 세금을 더 물릴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정부가 ‘유리알 지갑’을 가진 봉급생활자만 또 건드리려는 것이냐는 의구심이 나오고 있다.

○ 연봉 3000만 원 넘으면 고소득자인가

국세청에 따르면 2004년 근로소득세 납세의무자는 총 1162만4000명. 이 가운데 626만8000명(53.9%)이 과세대상이다.

나머지 535만6000명(46.1%)은 총소득에서 각종 공제금액을 뺀 과세표준 금액이 0원이어서 근로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는다. 재정경제부는 세금을 내지 않는 소득금액을 연봉 1535만 원(4인 가족 기준)으로 추정한 바 있다.

연간 근로소득 기준으로는 상위 21.5%(250만4000명)가 낸 근로소득세가 8조1526억 원으로 전체의 91.4%를 차지한다. 과세표준 기준으로는 상위 21.4%가 전체 세액의 93.1%를 차지한다(표 참조). 노 대통령의 발언은 여기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과세표준 1000만 원만 넘으면 상위 21.4%에 해당된다는 점.

개인에 따라 소득공제 항목인 가족수, 교육비, 병원비, 신용카드 사용액, 보험가입액 등이 다르지만 과세표준 금액이 1000만 원이면 연봉 약 3000만∼4000만 원 수준이다. 결국 노 대통령의 발언은 이들에게 세금을 더 물리겠다는 뜻이 된다.

○ 대통령 발언의 의도는 무엇인가

노 대통령이 복잡한 세금징수 통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나온 실수일 수 있다. 노 대통령은 평범한 봉급생활자 생활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연봉 3000만∼4000만 원만 받아도 근로소득자 중에서는 상위 20% 안에 든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다. 진짜 부자들은 20% 안에 드는 봉급생활자가 아니라 고소득 자영업자와 전문직 종사자들이다.

5월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 놓은 세제개편안에서 근로소득세율을 높이겠다는 생각을 미리 띄워 여론의 동향을 살펴보려고 했을 수도 있다. 양극화 및 저출산, 고령화 해결에 필요한 수십조 원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소득공제 축소와 세율 인상이 필요한데 고소득층의 돈을 더 걷어 저소득층에 나눠주는 것이라는 식으로 안심시키려는 의도일 수 있다.

고려대 이만우(李晩雨·경영학) 교수는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상황인식이 잘못돼 있다”며 “근로소득자의 세금 인상보다는 고소득 자영업자의 과세 포착률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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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영 기자 nirvana1@donga.com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한나라 청와대에 총공세▼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를 진행한 다음 날인 24일 한나라당이 청와대를 향해 총공세에 나섰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이날 주요당직자회의에서 노 대통령의 인터넷 대화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특히 증세와 관련해 ‘상위 20%’의 부담을 언급한 부분이 집중 포화를 맞았다.

윤건영(尹建永) 수석정책조정위원장은 “상위 20% 소득 수준은 대체로 연봉이 2500만 원에서 3000만 원 정도인 국내 1000개 기업의 신입사원 연봉”이라며 “대통령이 부자들의 실상을 너무 모른다”고 꼬집었다. 또 “상위 20% 발언은 납세자를 분열시키는 나쁜 편가르기식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엄호성(嚴虎聲) 전략본부장은 최근 청와대 행정관의 부인 살해 사건을 언급하며 “정권의 기강해이와 생명경시 풍조가 극에 달했다”고 공격했다. 이어 안상영(安相英) 전 부산시장, 정몽헌(鄭夢憲) 전 현대그룹 회장, 남상국(南相國) 전 대우건설 사장, 박태영(朴泰榮) 전 전남지사 등 검찰 수사를 받다가 자살한 인사들을 거론하며 “수많은 인사들이 이 정권에서 목숨을 버리는 행렬이 있었다”고 비난했다.

정인봉(鄭寅鳳) 인권위원장은 이강철(李康哲) 전 대통령시민사회수석비서관이 새 대통령 정무특보로 내정된 것을 놓고 “정치특보가 청와대 앞에서 횟집을 한다고 하니 이것이 도대체 청와대인지 어시장인지 알 수가 없다”고 냉소했다. “국가청렴위원회가 이에 대해 명확히 조사하라”는 주문도 내놨다.

한편 6공 시절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낸 민주당 김종인(金鍾仁) 의원은 “양극화의 심화는 지난 3년간의 정책 집행이 잘못됐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인데도 노 대통령은 남의 얘기하듯 책임을 미루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박성원 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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