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委 오늘 출범…위원 15명중 8명 與추천

  • 입력 2005년 12월 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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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직전부터 제6공화국까지 약 100년간의 과거사를 조사하게 될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1일 출범한다. 조사 기간은 1차 4년이며, 2년 연장이 가능하다.

과거사정리기본법이 규정하고 있는 ‘진실규명 범위’는 △일제강점기 항일 독립운동 △국력 신장에 기여한 해외동포사 △6·25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 희생 △광복 이후 헌정질서 파괴 및 권위주의 정권에 의한 인권 침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에 의한 테러 폭력 △과거사정리위가 진실 규명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사건이다.

이에 따라 진보당 조봉암(曺奉岩) 위원장 사형선고(1958년)와 재야운동가 장준하(張俊河) 선생 의문사(1975년), 군사정권에 의한 언론인 해직 및 언론 통폐합(1980년) 등 수많은 역사적 사건에 대해 새로운 해석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벌써부터 과거사정리위원회 내부에서 조사 대상 선정 기준의 모호성과 과거사에 대한 정치적인 판단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과거사정리위의 활동이 원활하게 이뤄질지는 알 수 없다.

▽100년 역사가 바뀔까=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과거사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게 될 과거사정리위원 15명 중 반수가 넘는 8명을 지명했다. 이들은 대부분 진보적인 성향으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이념적으로 민감한 시국사건에 대한 조사가 이뤄질 경우 이들에 의해 조사 결론이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사정리위는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을 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여권이 지명한 한 과거사정리위원마저도 30일 “결국 진실은 투표에 의해 결정되고 그 기준은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며 “저 사람이 남자냐 여자냐 하는 것을 투표를 통해 결정한다는 것은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나머지 7명의 과거사정리위원은 한나라당(3명)과 민주당(1명), 대법원(3명)이 지명한 인사들이다.

위원회의 조사 결과는 정부의 정책 변화를 불러오게 된다. 과거사정리기본법은 과거사정리위가 정부와 국회에 법령 제도 정책 관행의 시정 및 개폐, 역사의식 함양을 위한 교육 홍보에 대해 국가가 취할 조치를 권고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와 국회는 과거사정리위의 권고를 근거로 역사교과서 개정 등 실질적으로 역사에 대한 평가를 바꾸는 작업을 할 수도 있다.

▽조사 대상 선정을 둘러싼 논란 예상=진실 규명 범위에 ‘과거사정리위가 진실 규명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사건’이 포함돼 있어 과거사정리위원 다수의 판단이 조사 대상 선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난 사건의 조사 대상 해당 여부를 둘러싼 논란도 예상된다. 과거사정리기본법은 조사 허용의 조건을 ‘법원의 재심 사유’로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으나 법 제정 당시부터 열린우리당에서는 재심 사유를 폭넓게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또 과거사정리위의 조사 대상 사건은 대부분 국가정보원과 군, 경찰의 자체 과거사진상규명위의 조사와 중복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사정리위원의 쓴소리=대통령이 지명한 한 과거사정리위원은 30일 과거사정리위 활동의 효율성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 위원은 “여야의 대표 선수들이 나와서 명확하지도 않은 옛날 일들을 논의해 결론을 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6·25전쟁 전후 좌우익에 의한 학살에서 누가 어떻게 죽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과거사정리위는 여야 싸움판의 새로운 무대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결국 결과는 화해의 정반대로 가면서 새로운 쟁점만 만들어 낼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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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지난 세기는 외세의존-국가폭력 역사”▼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위원 15명 중 근현대사를 연구해 온 학자는 4명. 대통령 추천위원인 안병욱(安炳旭·57) 가톨릭대 교수와 김동춘(金東椿·46) 성공회대 교수, 열린우리당 추천위원인 김영범(金榮範·50) 대구대 교수, 그리고 민주당의 추천을 받은 김영택(69) 한국역사기록연구소장이다.

위원장의 물망에 오르기도 했던 안 교수는 2003년 2월 24일자 한겨레신문 기고에서 “지난 세기 한국사회는 분단과 전쟁, 그리고 외세 의존의 타율적인 역사였다”며 “한국의 지배층들은 미국의 지시를 받는 편이 익숙한 일이고 또 생존을 위해 가장 편한 방안으로 여겼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2004년 8월 20일자 같은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청산해야 할 과거의 부정적 유산으로 △일제 식민지배로 형성된 요인 △6·25전쟁 전후로 행해진 집단 학살 △독재 정권 시기의 국가 폭력 등 3가지를 꼽았다.

3명의 상임위원 중 한 명인 김동춘 교수는 안 교수의 기고 하루 뒤인 8월 21일자 같은 신문 기고문에서 과거 청산에 반대하는 논리들이 1949년 반민특위 무력화 과정에서 ‘부일 협력자’들이 들이댔던 논리와 유사하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당시 이승만과 한민당은 ‘반민특위가 빨갱이를 즐겁게 한다’, 반민법을 두고 ‘우리 경제를 하루빨리 복구하는 법이 우선이다’며 과거청산 세력을 공격했다”며 이것은 요즈음의 ‘국론분열론’ ‘경제우선론’ ‘진상규명불가론’ 등과 거의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올해 5월 한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도 “지난날의 분단과 냉전은 옛 친일세력을 부활시켰다”며 “그들은 자신들의 도덕적 취약성을 반공과 물질주의로 포장했고, 천민자본의 돈벌이까지도 시장질서라고 선전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들 외에 학계에서는 대법원 추천위원으로 안경환(安京煥·57) 서울대 법대 교수와 한나라당 추천위원인 이영조(李榮祚·50·정치학) 경희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안 교수는 2004년 ‘당대비평’ 겨울호에서 “세속의 힘을 가진 사람들이 또 다른 힘을 꺾기 위해 시도하는 ‘역사 바로 세우기’는 또 하나의 거짓과 왜곡으로 머무르기 십상”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현란한 구호와 함께 역사 바로 세우기가 거듭됐지만 무엇이 바로잡혔고, 무엇이 바로 세워졌는가. 이는 역사 바로 세우기가 권력투쟁을 목적으로 등장했다가 물러났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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