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 “보스니아 협상땐 21일도 끌었는데…”

  • 입력 2005년 8월 5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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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 北입장 밝히는 김계관 6자회담의 북한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가운데)이 4일 밤 중국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에 관한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베이징=연합
한밤 北입장 밝히는 김계관
6자회담의 북한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가운데)이 4일 밤 중국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에 관한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베이징=연합
“보스니아 분쟁 협상 때 21일을 끌었다. 지금 그때의 딱 절반이 지났다. 너무 오래했다고 힘들어할 것 없다. 물론 그때만큼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앞으로 한 발짝밖에 갈 수 없다고 생각할 때가 갈 수 있는 길의 절반 정도 온 것이다. 힘들지만 계속해 나가자.”(송민순·宋旻淳 외교통상부 차관보)

4일 오후 9시 10분(한국 시간 오후 10시 10분) 중국 베이징(北京) 댜오위타이(釣魚臺). 6자회담에 참석한 6개국 수석대표들은 힘들더라도 회담을 계속할 것이라는 결의를 이처럼 밝혔다.

북한이 최종 합의문 초안에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회담이 꼬이기 시작했지만 인내심을 갖고 이를 정상궤도에 다시 올려놓겠다는 뜻이었다.

한미 양국은 이에 앞서 4일 오후 5시 25분 댜오위타이에서 북한 측과 3자협의를 가졌다. 한국이 마련한 이 자리는 의미가 각별했다. 힐 차관보는 이날 오전만 해도 “북한과 만날 이유가 없다”고 못 박았고, 미 대표단은 북한과의 양자협의를 피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김계관(金桂寬) 북한 외무성 부상은 이날 점심 식사 전 송 차관보를 만나 SOS를 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한국의 주선으로 남-북-미 3자협의가 1시간 동안 열렸고 이 자리에선 핵심 쟁점에 대한 논의가 허심탄회하게 이루어졌다.

이날 각국 보도진의 관심은 북한의 움직임에 집중됐다. 북한대사관 앞엔 평소 20여 명의 기자가 진을 쳤지만 이날 오후엔 그 2배가 넘는 기자들이 모였다. 특히 오후 4시경 김 부상이 기자회견을 할 것이라는 뉴스가 흘러나오면서 보도진은 80여 명으로 늘어났다. 북한 경비원도 3명에서 10여 명으로 늘고 기자들을 줄 세우면서 기자회견 장소를 정리했다.

김 부상은 이날 밤 수석대표회의를 마친 뒤 오후 10시 30분경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대사관으로 들어간 뒤 다시 나와 보도진에 평화적 핵 활동 보장 문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밝혔다.

한편 급한 업무처리를 이유로 회담 중간에 귀국했던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외무부 차관) 수석대표가 5일 만인 4일 낮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그는 베이징 국제공항에서 6자회담이 ‘위기’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우리는 회담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회담은 하루나 이틀 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알렉세예프 차관이 돌아온 것은 회담 타결이 임박했음을 보여 주는 신호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

베이징=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北‘평화적 核이용’ 집착 이유▼

중국이 제시한 6자회담 합의문의 최종초안을 북한이 수용하지 않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평화적 핵 이용에 대한 권리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이번 회담의 핵심인 ‘북한 핵 폐기’를 어떤 문구로 합의문에 담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미국은 ‘현존하는 북한의 모든 핵무기 및 핵 프로그램의 폐기’를 요구하는 반면 북한은 ‘핵무기 및 핵무기 계획 폐기’로 한정해 평화적 핵 이용 권리는 놓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북한이 한국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5개국의 따가운 눈총에도 아랑곳없이 합의문 최종 초안을 수용하지 않을 만큼 이 문제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와 함께 경수로 2기 완공을 김일성(金日成) 주석의 유훈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북한에 있어 ‘김일성 유훈’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김 주석은 북한이 경수로 건설을 요구하면서 미국과 한창 교섭을 벌이던 1994년 7월 사망했다.

북한이 1993년 3월 탈퇴했던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하면서까지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내놓지 않겠다고 버티는 밑바탕에는 북한 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이 같은 ‘김일성 유훈’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이 6월 17일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핵 문제가 해결되면 NPT에 복귀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NPT 복귀 이후의 평화적 핵 이용을 염두에 둔 발언

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미국은 경수로에서 핵무기의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경수로 건설 재개와 같은 평화적 핵 이용 권리의 허용은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이다. 우리 정부가 경수로 대신 전력 200만 kW를 북한에 주겠다고 제안한 것도 경수로에 대한 미국의 강한 거부감을 의식한 조치이다.

2002년 10월 2차 북핵 위기가 터지면서 공사가 중단된 북한의 경수로는 200만 kW 규모로 이를 완공할 경우 북한은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편 북한은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국과 대등한 조건에서 주권국가로 대접받길 강력히 원해 왔다. 따라서 다른 국가들이 누리는 국제적 권리를 북한도 동등하게 행사하겠다는 논리로 평화적핵 이용을 주장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와 함께 초강대국인 미국을 힘겹게 상대해야 하는 북한으로선 평화적 핵 이용 권리마저 포기할 경우 미국에 대한 협상 지렛대를 전부 잃게 된다는 절박감을 갖고 있을 개연성도 있다.

베이징=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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