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백지신탁제]‘직무 관련 주식은 어디까지’ 논란

  • 입력 2005년 4월 21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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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를 통과한 고위 공직자 주식백지신탁제가 시행되면 공직자가 보유한 주식이 그의 직무와 관련성이 있는지를 가리는 기준을 놓고 논란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주식백지신탁제 시행을 앞두고 벌써부터 ‘주식을 강제 처분토록 한 조항은 재산권 침해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과 ‘고위 공직자의 부정 소지를 없애기 위해 권한에 비례한 권리 제한은 마땅하다’는 주장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직무 관련성 논란=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은 주식백지신탁제의 주식 처분 기준이 되는 직무 관련성을 ‘주식에 대한 직간접적인 정보의 접근과 영향력 행사의 가능성’으로 규정하고 있다. 행정자치부 주식백지신탁심사위가 해당 공직자가 직위 및 직책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보유 주식에 대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거나, 주가의 변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하면 그 주식은 처분 대상이 된다.

국회의원의 경우엔 판단이 둘로 갈린다. 우선 의원이 소속된 국회 상임위원회의 소관 업무와 보유 주식이 관련이 없으면 주식을 처분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은 소속 상임위에 관계없이 주식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얻고, 주식 시장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주식을 처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예를 들어 2월 말 재산공개 때 국회의원 중 보유 재산 1위를 차지한 무소속 정몽준(鄭夢準) 의원은 국회 교육위 소속으로 상임위 업무만으로 볼 때 정 의원이 보유한 현대중공업 주식 821만 주는 처분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국회의원의 주식시장에 대한 폭넓은 영향력이 기준이 된다면 정 의원은 21일 종가 기준으로 4228억1500만 원이나 되는 현대중공업 주식을 모두 처분해야 한다.

홍석현(洪錫炫) 주미 대사는 삼성전자 중앙일보 스포츠서울 삼성코닝정밀유리 보광훼미리마트 등의 주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주미 대사의 직무는 국내 주식시장에 직접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낮다는 주장이 많다.

진대제(陳大濟) 정보통신부 장관은 삼성전자 주식 9194주(21일 종가 기준 42억8400여만 원)를 보유하고 있다. 진 장관은 지난해 금융기관에 명의신탁을 했지만, 심사위가 정통부 장관의 직무를 삼성전자 주식과 관련성이 높다고 판단한다면 진 장관은 주식을 처분해야 한다.

참여연대는 2월 정통부 장관의 업무와 삼성전자는 관련성이 높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진 장관 측은 “정통부가 삼성전자를 직접 규제하지 않으므로 문제가 안 된다.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재산권 침해 논란=공직자의 주식을 수탁기관이 임의로 처분하는 행위는 사유재산권을 정면으로 침해한다는 지적이 많다. 열린우리당 ‘투명사회협약 실천협의회’가 부동산을 백지신탁 대상에 포함시킬지를 논의하면서 ‘신탁 부동산 임의 매각이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던 것이 주식 임의 처분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

일각에선 이 제도의 적용 대상에 고위 공직자 및 배우자뿐 아니라 공직자가 부양하는 직계존비속도 포함돼 ‘연좌제’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이 때문에 재산권과 공직 사이에서 고민하다 공직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면 ‘공무담임권 침해’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또 공직자들이 주식을 처분한 신탁회사나 자산운용사에 ‘저가 매각’을 이유로 법적 책임을 묻는 경우가 빈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행자위 법안심사소위원장인 열린우리당 우제항(禹濟恒) 의원은 “법안의 소위 심사 과정에서 법제처 등에 판단을 구해 위헌 소지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한누리 김주영(金柱永) 변호사는 “재산권 침해 논란은 있으나 내부자 정보를 이용한 대형 주가 조작 사건에 정치권이 개입된 경우가 많은 점을 감안하면 주식 백지신탁제의 취지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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