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랑의 東北亞]<下>한국의 전략 문제없나

  • 입력 2005년 3월 30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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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정부 출범 후 한국은 여러 차례 주변국들에 얼굴을 붉혔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반미감정이 중요 이슈로 불거졌던 2002년 대통령선거 당시 후보로서 ‘꼭 미국에 가야 대통령 되나’는 발언을 해 기존 질서에 대해 포문을 열었다. 노 대통령은 당선 후에도 주한미군의 감축과 역할 변경 등 한미동맹의 재조정 문제에 관해 거리낌 없이 ‘할 말’을 했다. 최근 독도 문제 등으로 갈등 관계에 있는 일본을 압박하는 데도 전면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한국 외교는 일관성을 잃고 있다. 이 때문에 주변국에서 한국의 외교적 언행을 신뢰하지 않는 현상도 나타난다. 한국의 외교 위기는 한국이 자초한 측면도 있는 셈이다.

▽이상을 좇는 한국 외교=노 대통령이 새로운 외교정책 비전으로 제시한 ‘동북아시아 균형자론(論)’은 미국의 세계전략 변화와 동북아 역내에서의 일본과 중국의 경쟁으로 촉발된 동아시아 ‘새판 짜기’에 대한 응전(應戰)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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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미국과는 동맹관계를 유지한 채 대등하고 호혜적인 수평관계를 지향하고, 중국과는 미래지향적 파트너십을 맺으며, 일본과는 교류 협력을 계속하되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우경화하는 데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논리다. 노 대통령은 나아가 북한을 포용해 한반도 평화정착을 이루겠다는 원대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에 입각한 외교가 냉철한 현실 판단과 치밀한 전략을 통해 실리를 추구하는 대신 이념과 명분을 더욱 중시하는 데 대해선 우려가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교관은 “노 대통령 개인의 신념이 너무 강해 외교부의 직언이 먹히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른 외교관은 “지도자의 퍼스널리티(성향)가 외교에 너무 많이 투영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냉담한 주변국들의 시선=노 대통령의 ‘호통 치는’ 외교에 대한 미국 일본 중국 등 주변국들의 평가는 냉랭하다. 주한 미국대사관의 한 직원은 “노 대통령이 충격적인 말을 쏟아내고 있어 대사관은 눈코 뜰 새가 없다”고 말했다.

외교안보 부처의 한 고위당국자는 “일본 당국자들은 기본적으로 한국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노 대통령과 한국 외교관들의 말이 다른 데서 빚어진 현상”이라며 씁쓸해 했다.

일본은 특히 북한 핵문제가 엄연히 국제 현안임에도 한국 정부가 국제 사회의 대북 압박에 반대하고 북한을 두둔하는 듯한 행태를 취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은 30일 ‘빗나간 외교전쟁’이란 사설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호를 어느 영향권으로 운항하려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베이징과 더 가까워지려고 노 정권이 중국에 애교를 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중국은 한국이 미국과 거리를 두고 중국에 접근하려는 것에 대해 의아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최근 동아시아 연구원이 내놓은 ‘일본의 안보 선택과 한국의 진로’라는 전략보고서는 “중국 스스로가 미국의 대안이 아니라고 하는 시점에서 한국이 나서서 중국을 대안이라고 할 필요가 없다”며 “미국과 일본을 외면할 경우 한국은 역으로 중국이나 북한으로부터 외면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동북아 균형자론의 허와 실=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이날 청와대 브리핑 자료를 통해 “참여정부는 균형자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한미동맹을 기본 토대로 삼는다”며 “공고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동북아 평화번영의 시대를 앞당기겠다는 것이 참여정부의 구상”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는 구상에 대해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김근식(金根植) 교수는 “균형자라는 개념은 동맹에서 한 발짝 빠져나와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겠다는 의사표시로, 균형자와 동맹은 양립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외교학과 하영선(河英善) 교수는 “균형자가 되려면 한쪽에 무게를 실을 경우 무게중심이 이동할 수 있어야 하는데 냉정하게 평가한 우리의 국력이나 외교적 역량에서는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하 교수는 “100년 전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 일본을 무릎 꿇게 하려면 일본이 근대국가 형성 과정에서 부국강병을 추구하면서 치밀하게 국력을 쌓아 온 교훈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북아의 격랑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 한국 외교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한미동맹 유지 △중국 일본과의 평화 협력 기조 유지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한국이 지향해야 할 목표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김우상(金宇祥) 교수는 ‘중추적 동반자(pivotal partner)’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균형자의 역할보다는 한국의 지지가 지역질서를 만드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보다 협력적인 개념이 중추적 동반자”라며 “모처럼 잡은 방향이 공염불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국가 역량의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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