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목사 北공작원에 피랍]정보당국 1년넘어 1명 검거

  • 입력 2004년 12월 14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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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 올림픽서 계순희와 함께2000년 중국에서 납북된 김동식 목사가 1996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 때 북한 유도 대표 계순희 선수와 나란히 선 모습. 미국에 거주하는 김 목사의 부인 정영화 씨는 “애틀랜타 올림픽 때 북한 선수단 통역과 가이드로 나선 남편이 계 선수를 딸처럼 생각하고 후원했다”고 말했다.-연합
애틀랜타 올림픽서 계순희와 함께
2000년 중국에서 납북된 김동식 목사가 1996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 때 북한 유도 대표 계순희 선수와 나란히 선 모습. 미국에 거주하는 김 목사의 부인 정영화 씨는 “애틀랜타 올림픽 때 북한 선수단 통역과 가이드로 나선 남편이 계 선수를 딸처럼 생각하고 후원했다”고 말했다.-연합
14일 새롭게 부각된 김동식(金東植·57) 목사 납북 사건은 최근 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북한의 대남(對南) 공작이 얼마나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최근 탈북자 간첩 사건에서 보듯이 북한 공작원들은 남한을 수시로 드나들고 있으며, 남한 정보당국은 이들의 신원을 파악하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실정이다.

▽사건 경위=중국 지린(吉林) 성 옌지(延吉) 시에서 보육원 겸 선교센터를 운영하던 김 목사는 2000년 1월 16일 낮 12시 반경 시내 불고기집에서 식사하고 나오다 북한 공작원들에게 납치됐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김 목사가 당시 탈북자들을 통해 북한에 기독교를 전파하고, 반(反) 김정일 세력을 키운다는 이유로 그를 납치했다.

김 목사는 납북 직전 잠시 한국에 들어 왔다. 그는 당시 중국에서 걸려온 탈북자 D 씨의 전화를 받은 뒤 옌지로 출국했다. 김 목사 가족들은 김 목사와 함께 사라진 D 씨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의 끄나풀로 김 목사를 유인했다고 생각한다.

가족들의 납북 주장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침묵을 지키다가 같은 해 10월 통일부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김 목사의 납북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김 목사의 납치 경위에 대한 설명이나 송환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기억에서 잊혀지던 이 사건은 월간지 신동아가 지난해 1, 3월호에서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공작원 이춘길 씨(가명)의 육필 수기를 공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다.

이 씨는 이 수기가 공개된 직후 한국으로 귀순해 공안당국의 수사에 협조했다. 공안당국은 그의 진술을 토대로 김 목사 납북 관련자들을 은밀히 추적해 류모 씨를 체포했다.

▽느슨한 안보 시스템=류 씨의 검거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에서 정부의 안보 시스템은 곳곳에서 허점을 드러냈다. 2003년 1월 귀순한 이 씨는 2000년 여름 탈북자 납치 공작에 회의를 느끼고 중국 상하이(上海)의 한국 영사관을 찾아갔다. 김 목사 사건이 일어난 지 수 개월 후였다. 그러나 영사관 측은 그에게 “도와줄 수 없다”는 이야기만 반복했다. 이때 이 씨의 귀순이 이뤄졌다면 더 신속히 김 목사 사건에 대한 대응 조치가 이뤄졌을 것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 씨는 또 2003년 3월 신동아에 게재한 수기에서 당시 김 목사 납북 공작에 참여한 북한인 3명과 조선족 6명의 실명을 모두 공개했다. 이번에 검거된 류 씨의 이름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 중 일부가 ‘남한에서 돈벌이를 하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

이 씨가 공작자의 이름과 소재지까지 제공했지만 공안당국은 1년 10개월 만에야 이들 중 1명을 검거하는 데 그쳤다. 조선족 신분으로 북한 공작원 교육을 받은 류 씨 등이 자유롭게 국내에 진입하는 것에 대해서도 속수무책이었다. 관계 당국에 따르면 류 씨가 출입국관리사무소를 통과할 당시 실명이 아닌 가명과 위조된 여권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안당국은 2001년 류 씨와 함께 입국한 것으로 알려진 공범 이모 씨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소재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 공작요원도 마음만 먹으면 한국을 수시로 드나들 수 있고, 한국에서 출국하지 않더라도 한중 간 국제전화를 통해 중국에 있는 북한 공작원들과 접촉할 수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부인의 호소=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김 목사의 부인 정영화 씨(55)는 14일 “남편이 옌지에서 납북되기 몇 달 전 대장암 수술을 받아 건강이 무척 좋지 않은 상태였다”며 “한국정부 당국이 우선 남편의 생사라도 먼저 확인해 달라”고 애타게 호소했다.

정 씨는 김 목사가 1996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에 참가한 북한 선수단을 위해 통역과 가이드로 나서 자원봉사를 했던 사실을 밝히고, “특히 당시 15세 어린 나이로 유도에서 금메달을 따냈던 북한의 계순희 선수를 딸처럼 생각하고 후원했다”고 말했다.

최호원 기자 bestiger@donga.com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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