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진 의원총회…‘거수기’에서 黨 최고의사결정기구로

  • 입력 2004년 11월 8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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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국회의 특징 중 하나는 의원들의 총의가 모이는 의원총회가 당론을 최종 결정하는 ‘실권(實權)기구’로 급부상했다는 점이다. ‘3김(金) 정치’하에서 당 지도부의 의중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거수기’에서 벗어나 누구도 결정사항을 거부하지 못하는 최고의결기구로 거듭나고 있다. 하지만 의총의 실세화에는 부작용도 있다. 목소리가 큰 강경파의 득세(得勢)가 그것이다. 강경파들에 의해 당론이 휘둘릴 경우 여야의 타협과 상생(相生)은 기대하기 어렵다.

▽강(强)이 지배하는 의총=17대 국회 개원 이후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 모두 수십 차례나 의총을 개최했다. 그러나 당의 노선이나 핵심정책을 놓고 전개된 노선투쟁의 결말은 대부분 강경파의 승리였다.

열린우리당의 최대 현안이었던 국가보안법 처리 문제는 두 차례의 고비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두 차례 모두 소장 강경파의 승리였다. 첫 번째는 국보법 폐지나 개정이냐를 결정했던 9월 9일 의총. 결론은 폐지 쪽으로 났다. 국보법 논쟁 2라운드였던 10월 17일 의총 역시 대체입법론자들을 물리치고 형법보완론이 승리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해찬(李海瓚) 총리 발언으로 인한 국회파행 직후에 열린 의원총회에서는 “총리가 사과해야 한다”는 온건파의 목소리가 “한나라당이 좌파공세에 먼저 사과해야 한다”는 강경론에 묻혔다.

한나라당은 소수파 강성 의원들로 인해 마지막 단계에서 당론 결정이 미뤄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9월 22일 한나라당은 그동안 미적거렸던 수도 이전에 대한 당론을 결정하기 위해 의총을 소집했다. 박근혜(朴槿惠) 대표 등 지도부는 당 내 수도이전문제특위 간사인 최경환(崔炅煥) 의원을 통해 충청권에 행정특별시 건설 등을 핵심으로 하는 대안을 마련해 이날 의원들의 추인을 받으려 했다. 하지만 수도권 의원 등을 중심으로 “비빔밥이다” “학술논문 같다”는 이의가 제기되면서 4시간 넘는 토론 끝에 당론 결정을 연기했고, 현재까지 당론을 정하지 못했다.

수도 이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 직후 한나라당은 지방분권화의 대안을 제시하려했으나 강경파들이 ‘투쟁론’을 제기해 그마저 무산됐다.

▽왜곡되는 ‘여론시장’ 의총=헌법기관인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모두 똑같은 발언권이 주어져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적극적인 소수가 침묵하는 다수를 끌고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의총은 당 노선이 포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사상의 자유시장(marketplace of idea)’이 돼야 하지만 시장이 항상 자유경쟁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열린우리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의원총회에서 국가보안법과 관련, 개정론을 제기하자 회의장 앞줄에 앉은 소장파 의원들이 이죽거리며 노려보더라”고 말했다,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모임(안개모)’ 소속의 한 의원도 “의총에서 온건파들은 말을 하지 않는다. 말을 잘못했다가는 각종 비난과 함께 ‘딴소리한다’며 망신이나 당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한나라당 내 원희룡(元喜龍) 의원 등 대표적 온건파들도 김용갑(金容甲) 의원 등 강경파로부터 “차라리 당을 떠나라”는 공격을 받았다.

▽‘시장 기능의 회복’ 절실=그렇다고 해서 의원총회를 대체할 의사결정구조도 없다. 권력의 분권화는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의총 내에서의 보다 자유롭고 활발한 토론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최근 여야 내부에서 중도파들이 적극적으로 발언을 개진하고 있는 것도 바람직한 현상이다. 열린우리당 중도파에 속하는 한 의원은 “40대 후반, 50대 초반 의원들을 중심으로 ‘우리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전했다.

일반 여론과 당내 여론의 괴리문제도 풀어야 할 주요 과제 중 하나다. 여야 내부의 온건파들은 “국민 여론은 우리 편인데 당내 분위기는 그 반대”라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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