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동관/정치적 完勝의 유혹

  • 입력 2004년 6월 9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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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DJ와 YS를 누르고 승리한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은 당선 직후 사석에서 여러 차례 “내가 양김(兩金)을 이겼다”며 기염을 토했다고 한다.

‘오만’으로 비칠 만큼 자신감에 넘쳤던 노 대통령의 태도가 안타까웠던지, 당시 TK(대구 경북)의 한 원로는 지인을 통해 “당신이 이긴 것이 아니라 양김이 진 것이다. 겸허하라”고 노 대통령에게 고언(苦言)을 전하기까지 했다는 후문이다.

실제 다음해인 88년 4월 13대 총선 직전까지 당시 여권은 ‘자칫 3분의 2의 의석을 얻을지 모른다’는 사치스러운 고민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총선 결과는 여소야대(與小野大)였고 정치적 완승(完勝)에 대한 유혹을 버리지 못했던 여권은 결국 90년 2월 3당 합당을 감행했다.

스포츠나 게임에서처럼 한국정치에서도 각종 선거 때마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변수는 ‘자신의 득점’보다 ‘상대의 실수’다. 그러나 그 결과를 ‘자신의 승리’로 생각하는 오만 때문에 선거승리 후 무리수를 거듭하다가 자멸의 행보를 보여 온 것이 우리 정치사의 한 패턴이다. 특히 선거승리 후에 범하는 무리수의 대부분은 바로 ‘민심이 내게 있다’거나 ‘완승이 바로 코앞에 있다’는 착각의 산물이다.

그런 점에서 YS와 DJ도 매우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96년 4월 15대 총선에서 여당인 신한국당이 대승한 원인 중의 하나는 민주당 분당과 DJ의 국민회의 창당, 즉 야권 분열이었다. 하지만 이를 자신의 전과(戰果)로 생각했던 YS는 본격적으로 DJ를 상대로 한 정쟁(政爭)의 한복판에 나섰다가 내리막길을 걸었다. 당시 자부심에 가득 찼던 YS는 총선 직후인 8월 청와대에서 신임 지구당 조직책들을 격려하면서 “역사는 승자만을 기억한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여권 분열에 힘입어 97년 대선에서 승리한 DJ 진영은 아예 대선에서 패배한 한나라당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다. DJ의 임기 초 여권 핵심부에서 ‘이회창(李會昌) 배제론’이니 ‘도덕적 패륜아’니 하는 얘기가 거리낌 없이 나왔던 데는 도덕적 우월감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이와 관련해 DJ는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하느님이 이런 어려운 때(IMF 위기상황)에 쓰려고 그동안 나를 단련시켰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그러나 여당의 대야압박은 결국 이회창씨를 확고한 야당지도자로 만들어주었을 뿐이다.

이번 4·15총선 결과에 대한 유력한 분석 가운데 하나는 무리하게 대통령 탄핵소추를 밀어붙인 ‘차떼기 정당’에 대한 표의 심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6·5 재·보선에서 참패한 뒤에도 아직 여권은 전반적으로 ‘승전 축하’의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특히 4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외교사절단을 초청한 자리에서 ‘정치적 부활론’을 얘기한 대목이 마음에 걸리는 것은 혹시라도 노 대통령이 총선 승리를 탄핵사태를 초래했던 모든 문제에 대한 면죄부로 생각해 야당에 대해 정치적 완승을 추구하려는 게 아니냐는 걱정 때문이다.

상생(相生)의 정치의 기본은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며 민심에 겸허하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정치적 완승주의에는 상생이 발붙일 틈이 없다.

이동관 정치부장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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