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청와대에서 열린 고위 당(黨)-청(靑) 회의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이 같은 ‘깜짝 선언’으로 일순 긴장감이 감돌았다. 참석자 중 어느 누구도 노 대통령의 발언을 예상치 못했다. 노 대통령의 깜짝 발언은 이어졌다. “당도 청와대의 권한이나 운영에 관한 한 가급적 간섭을 자제해 줬으면 한다. 그동안 수직적 간섭을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노 대통령의 발언에는 최근 문희상(文喜相) 대통령정치특보의 당-청 조율과 김혁규(金爀珪) 의원의 총리 지명에 반발했던 일부 당내 소장파에 대한 불쾌감이 배어 있는 듯했다.
당-청 분리는 노 대통령의 오랜 철학이었다. 문 특보에게 당-청간의 창구 역할을 맡겼던 것은 정무수석이 폐지된 상황에서 양측간의 가교 역할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 특보의 ‘노 대통령 의중 전달’은 ‘당에 대한 간섭’으로 비쳐졌고, ‘창구’가 아닌 ‘총독’이라는 불만까지 제기됐다. 소장파들이 이에 반발했고, 노 대통령도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노 대통령은 한 걸음 더 나갔다. 그는 “단결을 위한 단결은 좋지 않다. 대통령도 때로 국회 표결에서 패배할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100% 승리하려 하면 무리가 발생한다. 가끔 여당의 분표(分票)로 패배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정쟁(政爭)에 개입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국가원수와 행정수반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가겠다”고 말해 정치권과 일정한 거리를 둘 것임을 분명히 했다. 신기남(辛基南) 의장이 요청한 노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 당-청 회의 정례화에도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문 특보의 역할에 반발해온 소장파들도 당혹스러워했다. 안영근(安泳根) 의원은 “우리가 요구한 것은 정치특보를 폐지하라는 것이 아니라 순기능을 해달라는 것이었는데…”라며 “노 대통령 대단하네”라고 말했다. 정장선(鄭長善) 의원은 “우리 의견은 정치특보를 잘해서 당-청간 유기적 관계를 강화시키자는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김혁규 의원의 총리 지명에 대해서는 당 쪽에서 ‘전폭적 지원’을 약속했다.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는 “80여명의 의원을 만났다. 대다수 의원은 대통령의 인사권을 존중하고 국정운영 구상을 잘 뒷받침하겠다는 의견이었다”며 “내주 초 총리가 지명되면 차질 없이 관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무수석도, 정무장관도, 정무특보도 없는, 게다가 청와대와의 정례 회동까지 없는 집권 여당과 청와대의 관계는 분명 변화의 전기를 맞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총리 지명 문제에 대해서는 “5일 재·보선 이후에 결정하겠다”고 거듭 말해 관심을 끌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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