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의 생각과 말 걱정스럽다

  • 입력 2004년 5월 28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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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연세대 특강에서 드러난 노무현 대통령의 사고와 인식이 솔직히 걱정스럽다. 국회의 탄핵소추로 63일간의 직무정지를 겪었고, 스스로도 “많은 공부가 됐다”고 했지만 달라진 점은 별로 없어 보였다. 세상을 여전히 주류와 비주류로 나눠 보는 듯 했고, 야당을 자극하는 발언도 참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런 모습에 많은 국민이 적이 실망했을 것이다.

물론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가난 속에서도 남다른 신념과 근면으로 뜻을 이룬 개인사 얘기는 젊은 학생들에게 감동을 주었을 것이다.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도 과거의 근엄했던 대통령들과는 달라서 학생들은 탈(脫) 권위주의시대를 실감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대통령의 기본 인식은 우려스럽다. 보수와 진보에 대한 언급은 단적인 예다. 대통령은 보수를 “힘이 센 사람이 좀 마음대로 하자, 경쟁에서 이긴 사람에게 거의 모든 보상을 주자, 적자생존을 철저히 적용하자”는 것으로 보았다. 보수는 “가급적 바꾸지 말자는 것”으로 “합리적 보수, 따뜻한 보수, 별놈의 보수를 갖다 놔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반면 진보는 “더불어 살자, 인간은 어차피 사회를 이루어 살도록 만들어져 있으니 더불어 살자”는 것이라고 했다.

한 마디로 부적절한 설명이고 비유다. 대통령의 논리대로라면 보수는 악(惡)이고, 진보는 선(善)이 된다. 기득권을 지키려 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은 보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은 진보가 된다. 진부한 보혁(保革) 논쟁을 떠나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면 국민통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건전하고 합리적인 보수는 배제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다. 역으로 진보가 도그마에 빠져 있는 급진적 진보라면 배제의 대상일 뿐이다. 대통령이라면 이 둘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상생(相生)에 대한 언급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대화와 타협의 문화가 상생이지만 상대방에게 양보받기 위해,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 상생을 내세우면 반드시 실패한다”고 했다.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이다. 입으로는 상생을 말하지만 내심은 상대방에게 결코 굴복하지 않겠다는 전의(戰意)가 있어 보인다. 보기에 따라서는 야당을 향해 ‘김혁규 총리’ 카드를 밀어붙이겠다는 선전포고로 읽히기도 한다. 한나라당이 반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탄핵이 기각됐을 때 노 대통령은 상생과 화합의 정치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상생의 정치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경제에 대한 인식도 안이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정 세력이 개혁의 칼날을 피하기 위해 위기를 과장하고 있다는 인식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제가 있는 동안 경제는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집권 1년의 성적표는 3.1%의 성장에 줄어든 일자리 3만개가 아닌가. 경제위기의 진짜 원인은 대통령의 이런 인식에 있다는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런 사고와 인식으로는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도 없고 안심시킬 수도 없다. 오늘의 갈등과 분열 양상, 정쟁(政爭), 경제 위기의 원인이 무엇인지 대통령은 겸허한 마음으로 통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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