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 “청와대 뭔가 이상해”…개각파행 후유증 우려

  • 입력 2004년 5월 25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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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닌데….”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2기 시작이 고건 국무총리의 각료 제청 거부로 볼썽사나운 모양이 되자 파동의 근본 원인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여권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김혁규 대통령경제특보의 차기 총리 기용과 열린우리당 정동영(鄭東泳) 전 의장, 김근태(金槿泰) 전 원내대표 등 ‘대선주자군 관리’에 대한 노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무리수의 단초가 됐다는 얘기다.

대선주자군의 입각은 대선주자들의 조기 과열경쟁을 막아 레임덕을 차단하고 3년9개월이나 남은 임기를 안정적으로 끌고 가겠다는 구상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여권 내 정설이다. 이 때문에 외국 유학까지 검토했던 정 전 의장이나 원내대표 출마에 미련이 많았던 김 전 대표가 입각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문희상(文喜相) 대통령정무특보가 두 사람을 설득하고 압박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이는 또 열린우리당 내의 힘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막고 청와대의 의중이 관철될 수 있도록 ‘친정체제’를 구축하는 작업의 일환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의 직계그룹이 원내대표 선출 과정에서 ‘당 견인론’을 주창한 당권파 천정배(千正培) 의원 대신 이해찬(李海瓚) 의원을 밀었던 것도 ‘분할통치’를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는 게 지배적 해석이다.

하지만 탄핵사태로 일단 권위가 상처를 입은 데다 정무수석비서관의 부재로 청와대의 정무기능마저 제 기능을 못하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의욕을 앞세워 무리수를 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고 총리가 ‘사표’까지 제출하며 신인 장관 제청을 거부하기에 이른 데에는 청와대의 판단 실수가 큰 원인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로선 탄핵 역풍에 힘입어 위상이 강화된 상태에서 집권 2기를 맞은 노 대통령에 대해 대선주자군은 물론 당내 주요 인사들도 바싹 엎드리는 분위기다.

탄핵국면이 끝나면 당에 힘이 실릴 것이라던 예측이 빗나간 것은 기본적으로 노 대통령과 측근그룹의 ‘친정체제’ 구축에 대한 의지가 예상 밖으로 강했기 때문.

문제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열린우리당이 향후 노 대통령의 의중대로 움직여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번 각료 제청 파동에서 드러났듯이 자칫 친정체제를 강화하려는 청와대의 드라이브가 당내의 역학구도와 다른 결로 엇나갈 경우에는 파열음이 증폭되면서 오히려 통제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김혁규 총리 카드에 대해 당내에서조차 “총리 인준 투표시 자칫 반란표가 나올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이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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