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동우/용천참사와 易地思之

  • 입력 2004년 4월 28일 19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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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용천역 폭발사고에 대한 전국민적인 돕기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요즘 온라인 상에서는 또 다른 의견들이 활발히 개진되고 있다. 북한 당국에 대한 비판이 그것이다. 고통 받는 북한 동포를 도와야 한다는 점에는 동감하지만 북한이 남측 구호물자의 육로 운송을 거부하고 수송시간이 10시간 이상 더 걸리는 해상수송을 고집하고 있는데 대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들이다.

특히 북한 당국이 남측의 의료진 파견도 필요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는 점과 용천역 폭발사고 이틀 뒤 평양에서 대규모 조선인민군 창건 경축 야회를 열었다는 소식에 대해 개탄하거나 비난하는 의견이 많다.

흥미로운 것은 적지 않은 사람들의 이러한 의견이 국민 전체의 여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부의 이러한 불만에도 여야는 물론이고 서로 색깔을 달리하는 사회단체와 종교단체 그리고 언론들도 하나같이 북한동포돕기운동을 주도하거나 동참하고 있다.

이는 옛날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과거의 경우 우리 국민의 정성과 선의가 북한 당국에 의해 무시당하는 것이 알려지는 순간 분위기가 싸늘히 식는 것이 상례였다. 이 같은 변화에 대해 두 가지의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첫째는 우리 국민이 이제는 북한 당국의 입장까지도 이해해 줄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 있다는 것이다. 사실 북한 당국으로서는 남측의 구호물자를 실은 트럭들이 줄지어 자신의 국토를 종단해 달릴 때 주민들에게 미칠 수 있는 심리적인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둘째는 우리 국민이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의견과 여론을 가려서 받아들이는데 웬만큼 훈련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실 북한과의 관계는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즉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하지 않으면 백년하청이다. 과거 정권에서 북한과의 관계가 늘 진퇴를 거듭하며 제자리를 맴돌았던 것도 “내가 양보한 만큼 너도 양보하라”는 상호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인 측면이 있었다. 상호주의는 이익사회에서 통용되는 원칙으로 국제관계의 기본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는 가족 혈연 민족 등으로 대표되는 공동사회에서 곧이곧대로 적용하기는 다소 무리인 점이 없지 않다. 혈연은 거래를 끊는 것처럼 쉽게 청산되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지사지의 대상이 어찌 북한뿐이랴.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는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덕목이기도 하다. 총선을 거치면서 더욱 깊어진 이념간 지역간 세대간 갈등을 해소하는 길은 나와 다른 생각과 시각을 가진 사람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반대하는 당을 찍었다고 미워하고, 심지어 더불어 같은 국민노릇을 하기 싫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또 그런 사람일수록 민주사회와 민주시민을 주문처럼 외치고 다닌다.

그러나 민주시민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상대의 입장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 아닐까. 마침 용천 참사를 계기로 우리는 같은 민족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자는 대열에 함께 서 있다. 용천 참사는 우리 모두에게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해주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듯하다.

정동우 사회1부장·부국장급 fo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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