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태풍 피해 복구 만전 말뿐이었나

  • 입력 2003년 10월 12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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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매미’가 130명의 인명을 앗아가며 삶의 터전을 짓밟은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복구 작업이 지지부진하다는 소식이다. 이러다가는 많은 이재민이 마을회관이나 컨테이너로 만든 임시숙소에서 춥고 긴 겨울을 나야 한다. 돌이키기 어려운 피해에 좌절한 이재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가슴 아픈 소식도 간간이 들려온다. ‘국민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는 말은 정치적 구호로 끝나서는 안 된다.

안이한 사전 대처로 태풍 피해 최소화에 실패한 정부는 사후복구만큼은 최대한 신속하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초기에는 어느 정도 실천할 것처럼 보였으나 그때뿐, 말뿐이었다. 정부는 이재민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 ‘선(先) 지원 후(後) 정산’을 약속했지만 현장에서는 제대로 집행되지 않고 있다. 형체조차 없이 사라진 남해안 양식장은 복구 작업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등 적지 않은 피해 현장이 방치돼 있다. 부산항 크레인도 아직 흉물스러운 모습 그대로다.

복구 작업이 늦어지고 이재민 지원이 미흡한 데는 고위 공직자들의 책임이 크다. 태풍이 덮쳐 오는 와중에 대통령과 핵심 참모들이 한가롭게 뮤지컬을 보고 경제부총리가 골프를 친 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이런 일이 밝혀졌으면 이재민에게 진솔하게 사과하고 복구에 더욱 만전을 기했어야 옳다. 그런데도 각료들이 나서서 “그게 왜 잘못이냐”는 태도까지 보였다. 그러니 현장에서 제대로 지원이 이뤄질 리가 있겠는가.

당장 인명을 구하고 응급조치를 해야 할 때는 고위 공직자들의 현장 방문이 오히려 짐만 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경직된 하부 행정조직에만 복구 지원을 맡겨두면 형식주의와 절차주의로 흐르기 십상이다. 국무총리를 비롯한 각료들은 현장에 찾아가 이재민의 애로사항을 직접 듣고 범정부 차원의 지원을 서둘러야 한다. 이대로 추운 겨울을 나게 함으로써 이재민의 눈물이 ‘한(恨)’으로 응어리지게 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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