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영언/'4분의1' 정치

  • 입력 2003년 10월 7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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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우호적인 한 정치권 인사는 “사랑은 후회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대선에서 노 후보를 선택했던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던 자리에서다. 누군가가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과 언행에 문제가 있다며 “아무래도 잘못 찍은 것 같다”고 하자 나온 말이다. 노무현을 믿고 2번을 찍었으면 끝까지 밀어 주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상당수에게 지금 ‘사랑은 후회하는 것’이 됐다. 이런저런 모임에 가 보면 2번을 찍었지만 마음에 안 든다고 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말과 토론만 넘칠 뿐 실천이 없다거나, 지나치게 자기사람만 챙긴다거나, 맺고 끊음이 분명치 않다거나, 이유도 가지가지다. 정권 초기 기존 지지기반의 민심이 이렇게 흔들리는 일은 일찍이 없었다.

물론 2번을 찍었던 사람들이 다 그렇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노 대통령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호남 사람이나, 진보로 분류되는 사람들을 만나 보면 그런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이들을 주축으로 유권자 ‘2분의 1’의 지지로 당선됐다. 그렇다면 나머지 ‘2분의 1’로 외연을 확대해 지지의 폭을 넓혀 가야 했다. 그것이 ‘절반의 대통령’에서 ‘다수의 대통령’으로 가는 길이다. 그러나 1번을 찍은 사람들은 이미 저 멀리 가 있고 2번을 찍은 사람들도 상당수가 떠나가는 분위기다. 조금 과장하면 현재 노 대통령을 믿는 사람은 ‘절반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여러 여론조사 결과 대통령의 지지도가 30% 선을 맴돌고 있는 것이 이를 반영한다. ‘4분의 1 정치’ ‘4분의 1 대통령’이라면 지나친 표현일까.

민주당 분당은 이런 ‘4분의 1 정치’의 축약이다. 자신이 후보로 나서 당선된 당 하나 추스르지 못해 쪼개지도록 해야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노 대통령이 대선과정에서의 섭섭함을 접고 도와 달라, 절대 분당은 안 된다고 손을 내밀었다면 ‘신(新) 4당 체제’라는 혼란스러운 정치환경은 조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노사문제만 해도 그렇다. 경영자는 물론 노 대통령에 대해 우호적이던 근로자들도 이제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파문을 겪은 교육현장에서도 전교조 교사나 비전교조 교사나 거의 대통령을 원망한다고 한다. 여러 분야에서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환영 받지 못한 채 마치 협곡에 포위된 듯한 상황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바른 리더십은 자신을 믿는 사람을 더욱 따르게 하고, 믿지 않는 사람은 이해와 설득을 통해 가깝게 다가오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소수정권이 어려운 정국을 헤쳐 나가는 길이다.

인도네시아를 방문 중인 노 대통령은 교민 간담회에서 과거 주류세력과 민주화운동 세력간의 배척관계를 예로 들며 ‘공존의 지혜’를 강조했다. 그 말이 진정이라면 노 대통령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을 적(敵)으로 만드는 ‘뺄셈 정치’를 멈춰야 한다. 누구도 내치지 말고 껴안고 보듬어야 한다. 말 한마디 할 때마다 혹시라도 누군가를 자극하지는 않을지 미리 헤아려 봐야 한다. 정치 세계에서 ‘4분의 1’은 불안하다. 노 대통령의 임기는 4년4개월이나 남았다.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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