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결국 정부가 또 굴복했다

  • 입력 2003년 5월 26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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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또다시 이익단체의 불법 집단행동에 백기를 들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반대하며 전 조합원 연가투쟁을 하겠다고 나선 것은 그럴 만한 명분도 없을 뿐 아니라 학생을 볼모로 하는 구시대적인 행태로 그 자체가 개혁대상이었다. 이런 ‘협박’에 대해 정부가 전교조의 요구를 거의 모두 수용한 것은 화물연대 파업에 이어 일개 이익단체에 항복한 것과 다름없다. 목소리 큰 집단에 휘둘리는 이 정부의 갈등조정 기능에 위기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일을 지켜보면서 정부가 이렇게 말을 바꿀 수 있는 것인지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전교조의 요구는 독선적이고 극단적인 것”이라며 “정부의 굴복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들어줄 수 없다”고 단호한 대처를 지시한 것이 며칠 전이다. 노 대통령은 NEIS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에 대해서도 “과하다”고 밝혔다.

교육인적자원부는 또 어떻게 말해 왔는가. 전교조 주장은 수용할 수 없는 것이며 학교종합정보관리시스템(CS)으로 다시 돌아갈 경우 오히려 더 큰 인권 침해가 발생한다는 강경한 입장이었다. 엊그제까지 ‘원칙 고수’를 외치던 윤덕홍 교육부총리가 갑자기 돌변해 ‘위기상황에서 내린 정치적 결정’이라고 찬사를 늘어놓은 것은 어이가 없다.

이번 결정은 노 대통령의 ‘단호한 대처’와는 정반대로 정부가 전교조에 굴복한 것이다. 교육부의 기존 입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전교조가 요구한 NEIS의 3개 영역 제외, NEIS 전면 재검토 등이 거의 수용됐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교육부와 전교조 협상에 끼어든 것에 대해서도 납득할 만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인권침해 논란 이전에 이번 결정은 이 나라에 원칙과 합리의 실종을 알리고 있다. 정부는 문제가 해결됐다고 흐뭇해할지 몰라도 당장 시도교육감과 학부모단체의 반발 등 교육현장을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있다. 이미 황폐화된 교육의 미래가 더욱 암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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