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태(柳寅泰)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10일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 대표권한대행을 만난 자리에서 박지원(朴智元)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책임론을 제기한 것은 일단 정치적인 책임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측은 취임 전인 1월 말 이 사건이 다시 불거지면 박 전 실장과 임동원(林東源) 전 대통령외교안보통일특보가 국회에서 비공개 증언을 하고, 그것으로도 불충분할 경우 마무리 수순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해명에 나서는 방안을 희망해 왔다. 노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전 ‘검찰이 수사에 나서야 한다’고 하다가 ‘조속한 매듭’을 강조하는 선에서 언급을 자제해온 것도 김대중 정부측의 적극적인 대국민 설득을 통한 사건의 해결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 수석은 최근까지도 이 사건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진실을 알지 못한다. 전 정권 사람들은 이 사건을 파헤치면 국익에 손상이 온다고 하지만 솔직히 어느 정도 손상이 있는지도 알 수 없다”고 말해 왔다.
즉, 사실관계에 입각한 이번 사건의 법적 책임문제는 누구에게 귀착되는지 알 수 없다는 얘기였다.
그런데도 유 수석이 야당과의 대화과정에서 박 전 실장을 거명한 것은 결국 이번 사건을 매듭짓기 위해서는 전 정권 책임자들이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청와대 내부의 기류를 암시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한나라당도 공감하는 분위기다.
따라서 유 수석의 발언은 사전에 법적 책임의 수위에 대한 공감대를 정해놓고 한나라당과 협상을 시도하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가능하다.
물론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유 수석의 언급에 대해 “노 대통령의 조건부 거부권 행사에 앞서 명분을 쌓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설사 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그 원인 제공은 박 전 실장 등 대북 비밀송금 사건의 핵심 연루자들의 책임 회피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려 했다는 것이다.
한 고위당직자는 “DJ에 대한 사법처리 문제는 특검이 국익 차원에서 신중하게 잘 판단할 것으로 본다”며 사실상 반대의사를 피력하면서도 “박 전 실장이나 임 전 특보 등 대북 비밀송금 사건의 주역들에게까지 그냥 면죄부를 줄 경우 누가 용납하겠느냐”고 덧붙였다.
한편 민주당 내에서도 그 같은 기류는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동교동계의 한 의원은 최근 “박 전 실장과 임 전 특보는 DJ정부 내내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사람으로서 대북송금 같은 문제가 터지면 ‘내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자처해야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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