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실장 책임론'배경]'前정권 실세가 해결' 청와대기류 반영

  • 입력 2003년 3월 11일 06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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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대북 비밀송금 사건의 열쇠는 결국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갖고 있다’는 취지의 설명을 거듭하고 나서면서 앞으로 특검제 실시 문제가 정권간 책임논란으로 번질 기세다.

유인태(柳寅泰)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10일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 대표권한대행을 만난 자리에서 박지원(朴智元)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책임론을 제기한 것은 일단 정치적인 책임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측은 취임 전인 1월 말 이 사건이 다시 불거지면 박 전 실장과 임동원(林東源) 전 대통령외교안보통일특보가 국회에서 비공개 증언을 하고, 그것으로도 불충분할 경우 마무리 수순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해명에 나서는 방안을 희망해 왔다. 노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전 ‘검찰이 수사에 나서야 한다’고 하다가 ‘조속한 매듭’을 강조하는 선에서 언급을 자제해온 것도 김대중 정부측의 적극적인 대국민 설득을 통한 사건의 해결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 수석은 최근까지도 이 사건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진실을 알지 못한다. 전 정권 사람들은 이 사건을 파헤치면 국익에 손상이 온다고 하지만 솔직히 어느 정도 손상이 있는지도 알 수 없다”고 말해 왔다.

즉, 사실관계에 입각한 이번 사건의 법적 책임문제는 누구에게 귀착되는지 알 수 없다는 얘기였다.

그런데도 유 수석이 야당과의 대화과정에서 박 전 실장을 거명한 것은 결국 이번 사건을 매듭짓기 위해서는 전 정권 책임자들이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청와대 내부의 기류를 암시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한나라당도 공감하는 분위기다.

따라서 유 수석의 발언은 사전에 법적 책임의 수위에 대한 공감대를 정해놓고 한나라당과 협상을 시도하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가능하다.

물론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유 수석의 언급에 대해 “노 대통령의 조건부 거부권 행사에 앞서 명분을 쌓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설사 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그 원인 제공은 박 전 실장 등 대북 비밀송금 사건의 핵심 연루자들의 책임 회피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려 했다는 것이다.

한 고위당직자는 “DJ에 대한 사법처리 문제는 특검이 국익 차원에서 신중하게 잘 판단할 것으로 본다”며 사실상 반대의사를 피력하면서도 “박 전 실장이나 임 전 특보 등 대북 비밀송금 사건의 주역들에게까지 그냥 면죄부를 줄 경우 누가 용납하겠느냐”고 덧붙였다.

한편 민주당 내에서도 그 같은 기류는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동교동계의 한 의원은 최근 “박 전 실장과 임 전 특보는 DJ정부 내내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사람으로서 대북송금 같은 문제가 터지면 ‘내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자처해야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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