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종일 北과 비밀접촉]核포기-경제지원 '빅딜' 제안說

  • 입력 2003년 3월 5일 19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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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종일(羅鍾一)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달 20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북한측 인사와 비밀리에 만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정부가 새로운 남북 채널 구축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송경희(宋敬熙) 청와대 대변인은 5일 “국가 이익이 걸려 있는 미묘한 문제”라며 구체적인 설명을 피했으나 일단 북핵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대북접촉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

▽무엇을 논의했나〓나 보좌관과 북측 인사의 접촉에서는 당면 최대 현안인 북핵 문제가 거론됐을 가능성이 높다. 접촉 시점이 북핵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새 정부 출범을 바로 앞둔 시기였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과 북한이 지금까지 북핵 해법의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나 보좌관은 당시 북측과의 접촉을 통해 한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탐색했을 개연성이 있다. 그는 베이징 방문에 앞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과의 접촉을 통해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에 관해 미리 언질을 받고, 모종의 역할을 수행했을 가능성도 있다.

나 보좌관이 북핵 문제의 궁극적 해결 등을 위해 북측과 남북정상회담 문제를 논의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지만 청와대는 그런 사실은 결코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나 보좌관이 북측과 에너지 문제를 협의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는 주영대사 시절부터 동북아 경제공동체 구성을 위해 사할린과 북한을 거쳐 남쪽으로 이어지는 러시아 천연가스관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이 같은 프로젝트를 통해 에너지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북측에 전달했을 수도 있다고 외교소식통들은 추정한다.

한편 당시 대북접촉이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없지 않다. 베이징 비밀접촉이 이뤄진 20일 서해에서 북한 미그기가 연평도 부근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데 이어 24일엔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를 했고, 이후 지속적으로 미국을 비난해 왔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북한은 남북이 당사자로서 북핵 문제 해결에 나서자는 우리측의 제의를 거절하고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통해 해결을 모색하겠다는 종전 입장을 재확인했을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남북 비밀접촉의 재개 여부〓나 보좌관이 어떤 자격으로 북측과 접촉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일부의 추측대로 그가 주영대사가 아니라 새 정부의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의 자격으로 대북접촉에 나섰다면 공식적인 남북대화와는 별도로 ‘비선 대화 채널’을 구축하려 했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나 보좌관의 대북접촉이 충분한 준비과정을 거치고 이뤄졌는지 여부는 논란이 되고 있다.

노 대통령이 5일 직접 나 보좌관의 대북접촉 보도에 대해 “어떤 내용이냐”고 물었다는 청와대측 전언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멤버들 역시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정황은 얼른 이해하기 어렵다. 인수위에서 활동했던 한 위원은 “나 보좌관이 북측과 접촉했다는 것에 관해 아무런 정보도 없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대북접촉은 국민의 동의를 얻어 투명하게 추진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한편 김대중 정부 시절 대북 비밀접촉에 대한 국민적 의혹을 고려할 때 새 정부가 같은 전철을 밟으려 했다는 것에 비판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일부에선 당시 주영대사의 신분이던 그가 북측 인사를 만난 직후에 서울에 오지 않고 곧바로 영국에 귀임한 점을 들어 그가 새 정부의 대북 비밀특사는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만일 당시 접촉에서 중요한 이야기가 오갔을 경우 나 보좌관이 곧바로 한국에 와 노 대통령(당선자)에게 이를 보고했어야 마땅한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에 비춰볼 때 대북접촉이 특별히 중요한 접촉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재로선 대북접촉을 둘러싼 온갖 추측이 난무하지만 당사자들이 굳게 입을 다물고 있어 실체적 진실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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