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北황강댐' 미온대응 논란]대선-개성공단 의식 은폐의혹

  • 입력 2002년 12월 10일 19시 07분


북한이 임진강 상류에 3억∼4억t 규모의 대규모 다목적댐인 ‘황강댐’을 건설 중인 사실이 확인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원 안은 휴전선 인근에서 카메라에 잡힌 4월5일댐 발전소. - 동아일보 자료사진
북한이 임진강 상류에 3억∼4억t 규모의 대규모 다목적댐인 ‘황강댐’을 건설 중인 사실이 확인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원 안은 휴전선 인근에서 카메라에 잡힌 4월5일댐 발전소. - 동아일보 자료사진
북한이 임진강 상류인 황해도 금천군 황강리에 짓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 황강댐과 관련한 우리 정부의 대응을 둘러싸고 각종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정부가 10월 초에 이 같은 사실을 알았는데도 북측에 적극적인 설명을 요구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북한 눈치보기’에 급급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또 그동안 황강댐이 건설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국민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대통령 선거나 개성공단 착공식 등에 미칠 파장을 계산해 이 댐의 존재 자체를 은폐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커지고 있다.

▽황강댐이 알려지기까지〓건설교통부는 올 10월 초에 국가정보원을 통해 북측에 황강댐이 건설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인공위성 사진 등을 통해 댐 건설이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10월30일∼11월2일 북한 평양에서 열린 ‘제2차 임진강 수해방지 남북 실무협의회(이하 임진강 수방 협의)’ 때 정식 의제로 상정하지는 않고, 북측에 이에 대한 확인 및 관련 정보를 요구했다. 하지만 북측은 이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고 건교부는 전했다.

그러나 수방 협의 당시 정부는 황강댐 건설계획과 관련된 정보를 국내 언론에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이후 건교부는 인공위성 사진과 주변 지형, 등고선 등을 토대로 이달 5일 황강댐의 위치와 추정저수량, 공사진척도 등이 담긴 ‘임진강 황강댐 현황 및 대책’이라는 대외비 문건을 마련했다.

▽정부, 은폐 의혹 적지 않다〓건교부는 그동안 황강댐이 건설 중인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아직 진위(眞僞)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또 다음 달로 예정된 ‘제3차 임진강 수방협의’에 정식 의제로 상정해 북측의 공식 확인과 정확한 공사 현황 정보 등을 받아낸 뒤 정부의 종합 대책을 마련, 발표할 계획이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표지를 포함, 7쪽 분량의 건교부 고위 간부용 자료에서 정부가 ‘확인’이라는 확정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터널 및 댐 기초공사 중’ ‘예성강으로 물을 돌려 발전과 개성공단 용수공급에 활용’ 등과 같은 표현은 정부가 황강댐에 대한 실상(實相)을 상당 수준 확인하지 않고서는 작성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토목전문가도 “10월 초 인공위성 사진을 통해 댐이 건설 중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어 정부 해명의 신뢰성을 의심케 한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정부가 황강댐의 존재를 공개하면 이달 중 착공을 앞둔 개성공단 사업 등 남북 경협에 미칠 영향과 대선을 앞둔 미묘한 시기를 감안, 공개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고 보고 있다.

▽정부 대응, 너무 미온적이다〓황강댐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을 보면 정부가 지나치게 북측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지적도 면키 어렵다.

정부 추정대로 황강댐이 지어진 뒤 경기 파주 연천에 연간 2억9300만t 규모의 물이 부족해지고 물을 임의대로 흘리면 대규모 홍수 피해도 우려된다.

그만큼 국민에게 끼치는 파급 효과가 큰 점을 감안, 정부는 10월에 있었던 ‘제2차 임진강 수방 협의’ 때 이를 정식의제로 상정하고, 북에 정확한 실상 파악을 요구했어야만 했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또 현재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 남북간 대화가 이뤄지고 있음에도 황강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경기 북부 주민들의 불안〓북한이 임진강 상류에 황강댐을 건설하고 있다는 소식이 10일 본보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경기 연천 파주지역 주민들은 불안한 표정이 역력하다.

파주어촌계 1선단장 민선근(閔仙根·53)씨는 “황강댐이 건설되면 파주 연천의 임진강에는 수량이 줄고 수질이 악화돼 어족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며 “보 형태의 소규모 댐인 ‘4월5일댐’으로도 홍수피해를 보았는데 대규모 황강댐이 완공되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연천지역사랑 실천연대 이윤승(李允承·44) 사무국장은 “농업용수와 식수를 공급하는 임진강 상류에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댐이 건설되면 큰 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4월5일댐’ 피해가 발생하자 올 7월 연천군 중면 횡산리 남방한계선 인근에 수위관측소를 설치했고 북한의 무단 방류에 대비한 경보체제를 갖추었다고 장담했으나 9월 또다시 피해가 발생해 주민들의 불신이 더욱 커져 있는 상태다.

한 어민은 “작은 댐으로도 주민들만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보았는데 북한의 대형 댐 건설을 알리지도 않은 정부가 대책을 세웠을 리 있겠느냐”며 정부에 대해 강한 불신감을 나타냈다.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파주·연천〓이동영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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