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론초프 러 前외교관 ‘1년만에 다시간 북한’

  • 입력 2002년 12월 5일 18시 05분


《“만나는 사람마다 쌀값이 500배나 오른 이야기를 꺼내며 ‘살기가 바빠졌다(힘들어졌다)’고 하소연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아직은 견딜 만하다’는 분위기였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평양통’인 알렉산드르 보론초프 러시아 동방학연구소 한국과장(사진)이 지난주 1년 만에 북한을 다녀왔다. 지난해 말까지도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관에서 러시아 외교관으로 근무했던 그는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로 2년 동안 서울에서 생활한 적도 있어 남북한을 두루 잘 안다. 4일 그를 만나 북한 얘기를 들어 보았다.》

-경제개혁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반응은….

“북한주민들은 7월 단행된 가격인상 등 일련의 경제개혁 조치로 생활이 빠듯해졌고 불안한 미래에 대해 긴장하면서도 여전히 ‘큰 혼란이 일어난 것은 아니잖으냐’고 애써 위로하는 듯 했다. 또 북한에서는 ‘개혁’이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느끼는 듯 꼭 ‘경제개선 조치’라고 고쳐줬다.”

-1년 만에 북한을 다시 방문했는데 달라진 점은….

“북한 가기가 훨씬 쉬워졌다. 흔히 러시아에서는 북한에 가기가 쉬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지난해까지는 그렇지 않았다. 교통편이 나빠 베이징까지 비행기로 가서 열차로 갈아타고 북한에 들어가야 했는데 지금은 러시아 극동에서 평양으로 바로 가는 고려민항의 정기항공노선이 주 4편이나 생겼다. 이번에 개인자격으로 북한을 다녀왔는데 러시아 여행사에 의뢰했더니 항공편과 호텔은 물론 가이드가 딸린 차량까지 다 알아서 마련해줬다. 1주 동안 다녀오는 데 1500달러(약 184만원) 정도를 여행사에 지불했다.”

-러시아와 평양간 여객기의 분위기는….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로프스크에서 각기 2편이 오간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할 때 하루 연착했고 승객은 12명이었는데 대부분 북한인이었다. 퇴역한 옛 소련제 프로펠러 비행기인 IL-18을 타고 1시간30분 만에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오랜만에 만난 북한 친구는 옛날에는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사로청)의 간부였는데 지금은 극동을 오가며 무역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동안의 변화를 실감했다.”

-오랜만에 본 평양의 인상은….

“외화상점의 가격은 그대로였고, 평양에 사는 외국인이나 관광객의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다. 호텔 등에서 중국인이 많이 눈에 띄었는데 상당수가 관광객이라고 했다.”

-1일부터 달러 사용 금지 조치가 내려졌는데 미리 알았는지….

“북한에 체류하는 동안은 듣지 못했다. 내년 3월 다시 북한에 가기 위해 평양 양강도호텔을 예약했는데 가격을 달러가 아닌 유로로 알려줘 그 조치를 알게 됐다. 숙박비가 95달러였는데 97유로가 됐다.”

-이 조치의 배경이 뭐라고 보나.

“이미 달러가 널리 쓰이고 있는 북한의 현실에서 얼마나 효과적일지 모르겠다. 북한 당국은 달러를 지렛대로 한 미국의 경제적 간섭에 대비한 자위 수단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나 일본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태도는….

“미국에 대한 반감은 여전했고 북-일 수교협상 지연도 일본 책임으로 돌렸다. 일시적으로 일본에 돌려보낸 납치피해자를 돌려보내 주지 않고 있는 일본이 잘못이라고 했다. 어쨌든 납치를 저지른 북한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는 게 아니냐는 물음에 ‘과거의 일을 따지자면 일제가 강제로 우리 동포를 사할린으로 끌고간 사실부터 거론해야 한다’는 반응들이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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