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방북 성사까지]日관방장관 “1년동안 물밑교섭”

  • 입력 2002년 8월 30일 22시 48분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험악했던 북한과 일본의 관계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방북으로 급진전되기까지는 북-일 외교당국간의 보이지 않는 물밑교섭이 있었다.

이번 방북의 결정적 계기는 25일 평양에서 열린 북-일 외무성 국장급 협의 때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에게 관계개선을 희망하는 고이즈미 총리의 ‘친서’가 전달된 일.

친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러시아소리방송은 28일 “일본이 식민지 과거사에 대한 ‘서면 사죄’에 동의했고 북한의 물질적 배상요구에 상응하는 경제적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또 김 위원장도 고이즈미 총리의 친서에 대해 “용기를 주어 감사한다”며 사의를 표명함으로써 양국 정상이 급격히 근접하는 모습을 보였다.

양국은 외무성 국장급 협의에서 일본의 납치의혹 해결 요구나 북한의 식민지지배 보상 요구가 모두 진전이 없자 공동발표문에서 ‘문제 해결에는 정치적 의사가 중요하다’고 명시해 양국 정상의 정치적 결단에 맡기자는 입장을 정리했다.

양국 정상회담의 준비 과정에 대해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관방장관은 “1년간 서로 호흡을 맞추는 물밑교섭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 고이즈미 총리도 “상당히 오랜 기간 북한이 성실하게 협상을 할 것인지 살펴왔다”고 말해 북한에 대한 불신이 어느 정도 해소된 시점에서 방북을 결정했다는 추정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괴선박 침몰 문제나 납치 문제 등으로 경색됐던 양국 관계가 불과 몇 달 사이에 급반전된 데에는 주변정세의 변화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 미 일과 북한의 관계에서 중심축 역할을 하는 북-미 관계가 미국 특사의 방북으로 풀릴 조짐을 보이자 일본이 자신감을 얻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또 8월 15일 광복절을 전후로 서울에서 7차 남북장관급회담과 민족통일행사가 진행됐고 곧바로 경제협력추진위원회 2차 회담이 진행되는 등 남북의 빠른 접근도 일본의 대북 접근을 재촉했을 것으로 보인다.

도쿄〓이영이특파원 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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