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아태재단, 일해재단 꼴 나려는가

  • 입력 2002년 2월 24일 17시 53분


아태평화재단의 전 현직 임원들이 이용호(李容湖)씨 사건과 관련된 혐의가 줄줄이 드러나 의혹의 한복판에 서 있는 인상을 준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994년 아태재단을 설립해 이사장을 맡아오다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차남인 김홍업(金弘業)씨를 부이사장으로 앉혔다. 아태재단의 영어 명칭은 ‘The Kim Dae-jung Peace Foundation’으로 곧 김대중 평화재단이다. 이러한 재단에 대통령의 친위 인사들이 포진하고 있으니 아태재단 전현직 임원의 비리는 개인 차원의 것이 아니라 권력형비리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김 대통령은 퇴임 후 아태재단으로 돌아가 활동할 구상으로 최근 동교동 사저 옆에 지상 5층, 지하 3층 건물을 신축했다. 미국 지미 카터 대통령처럼 퇴임한 대통령이 현실 정치에 개입하지 않고 국제평화나 빈곤 타파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 대통령이 아태재단을 만든 것은 남북 문제와 국제평화를 위한 싱크탱크로 키우자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이사장이 공석인 재단에서 가장 높은 자리인 부이사장에는 차남을 앉히고 동교동 집사 출신이 상임감사를 하는 구도로 짜놓았으니 순수해야 할 재단 주변에 연구활동과는 무관한 브로커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아태재단에 명함을 걸어놓고 호가호위하며 부패 사건에 개입한 사람들도 여럿이다.

아태재단은 설립 후 작년 7월까지 후원금으로 213억원을 모금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상당액은 대통령 일가와 이사 감사로 있는 현직 장관, 민주당 의원들의 영향력을 보고 낸 돈이라고 봐야 한다. 아태재단은 후원금 기탁 내용, 재단건물 신축비용을 포함한 회계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우물쭈물 넘어갈 수도 없고 언젠가는 드러나고 말 일이다.

아태재단이 족벌체제로 운영돼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투명한 조직으로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 꼴이 나고 말 것이다.

황호택기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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