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때늦은 공적자금 대책]또 뒷북 처방… 구멍만 키운다

  • 입력 2001년 11월 30일 18시 44분



공적자금관리위원회라는 기구가 있다. 국회가 작년 말 의원입법으로 공적자금관리특별법을 만들면서 생긴 조직이다.

정부는 당초 ‘공자위’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 의원들의 발의로 어쩔 수 없이 공자위를 만들긴 했지만 하는 일은 별로 없다. 한 달에 2, 3번 회의를 열어 대한생명과 서울은행 매각 방안을 논의하지만 성과는 없다.

공자위는 공적자금 조성과 투입 및 회수 과정에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면피주의로 만든 옥상옥(屋上屋)일 뿐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러한 면피주의와 ‘뒷북’ 행정이 공적자금이 새는 구멍을 키운 것이다.

진념(陳稔)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30일 유관기관협의회와 합동조사단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금융기관에 50억원 이상의 손실을 입힌 부실기업주 16명이 98년 1월부터 2001년 7월까지 319번이나 해외여행을 하며 돈을 펑펑 쓸 때는 손을 놓고 있다가 감사원이 7조원 이상의 은닉재산을 찾아냈다고 발표하자 하루 만에 내놓은 대책이다. 전형적인 뒷북 행정이다.

유관기관협의회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공적자금이 투입되기 시작한 98년 초부터 있었다. 미국은 공적자금을 투입할 때 예금보험공사(FDIC) 연방수사국(FBI) 국세청(IRS) 정리신탁공사(RTC) 등이 합동으로 부실 책임자를 가려내 빼돌린 재산을 철저하게 찾아내 추징한다.

부실기업주와 부실금융기관 임직원에 대한 조사는 올 들어서야 겨우 시작됐다. 작년 말 공적자금관리특별법이 만들어지고 예금보험공사에 부실기업에 대한 조사권이 주어진 데 따른 것이다. 예보는 3월부터 대우와 고합에 대한 조사를 벌여 김우중 전 대우 회장과 장치혁 전 고합 회장이 숨겨놓은 재산을 찾아냈다. 하지만 예보 혼자만으로는 조사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은닉재산을 제대로 찾아내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감사원은 이에 대해 “금융부실에 책임이 있는 채무관계자를 제대로 조사했으면 더 많은 은닉재산을 더 빨리 찾아내 공적자금을 더 많이 회수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예보는 대동은행 등 10개 부실 금융기관 채무관계자 9555명에 대해서만 재산조사를 해 2607명의 부동산 7494억원 어치를 가압류했다. 그렇지만 감사원은 제일은행 등 70개 금융기관에 10억원 이상의 손실을 입힌 채무관계자 7848명을 조사해 6조6545억의 숨겨둔 재산을 찾아냈다. 조사대상을 확대하면 더 많은 재산을 찾아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공적자금 조성과 투입 시기를 놓쳐 부담을 키웠다는 비판도 있다. 감사원은 재경부가 작년 5월 30조5000억원의 공적자금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추정하고도 신속하게 조성하지 않아 금융구조조정에 차질을 빚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신협의 예금을 예금보험 대상에 포함해 공적자금을 1조9500억원이나 더 부담하게 됐다며 해결방안을 마련하라고 재경부에 통고했다. 재경부는 이에 대해 “신협을 예금보험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국회”라며 “국회가 책임질 일”이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신협 출자금을 보험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마련하면서도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 150조원 가운데 37조원만 회수했을 뿐이지만 회수 방안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있다.

금융연구원 이동걸(李東傑) 연구위원은 “회수 불가능한 금액이 얼마인지 솔직하게 추정한 뒤 손실 분담을 어떻게 할지 등에 대해 실현 가능한 계획을 만들어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홍찬선기자>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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