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새 실험대 下]야당은 어떻게 변해야하나

  • 입력 2001년 11월 13일 18시 35분


사랑의 쌀보내기
사랑의 쌀보내기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민주당 총재직 사퇴는 어느 면에서는 야당에 더 큰 과제를 안겨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한나라당의 존재를 지탱해온 힘이 상당 부분 여권의 실정(失政)에 따른 반사이익과 ‘반(反) DJ 정서’에 힘입은 것이었다고 한다면 이제부터는 스스로의 집권 청사진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능동적으로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질적 변화의 의무가 야당에 주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국회 과반의석에 1석 부족한 136명의 의원을 거느린 ‘거야(巨野)’라는 점에서 국정 운영의 동반책임을 진다는 각오로 여야관계와 대정부관계를 설정해 나가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글 싣는 순서▼

- 上. DJ 당총재 사퇴후 첫숙제
- 中. 與-野-政 '열린 협력' 절실
- 下. 야당은 어떻게 변해야하나

김대중 대통령이 8일 민주당 총재직에서 물러난 직후 한나라당 내에서는 “허(虛)를 찔렸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정치게임의 논리로만 보아도 김 대통령의 여당 총재직 사퇴는 한나라당에 복합적 메시지로 다가왔던 게 사실이다.

김 대통령이 정쟁(政爭)의 복판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은 ‘반여(反與)’ 또는 ‘반 DJ 정서’가 이제 더 이상 한나라당이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작 한나라당을 더욱 고민하게 만든 대목은 앞으로 전개될 새로운 정치판의 패러다임 변화에 한나라당이 잘 적응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 변화를 주도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는 중압감이었다.

지금까지 한국정치에서 여야관계의 정형(定型)이 한쪽이 이득을 보면 다른 쪽이 손해를 보는 ‘제로 섬(zero sum) 게임’이었다면 이제부터 여와 함께 만들어 내야 할 새로운 패러다임은 글자 그대로 ‘비(非) 제로 섬 게임’, 즉 상생(相生)의 정치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권이 아직 새로운 국정운영의 틀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한나라당도 ‘옛 틀’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는 점이다.

단적인 예로 김 대통령이 총재직에서 물러난 8일부터 13일까지 한나라당은 19건의 성명 및 논평을 내놓았으나 전부가 정부 여당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반면 주도적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이른바 긍정적인 대안 제시는 단 한 건도 없었다.

한나라당이 국회 각 상임위에서 자민련과 손잡고 현 정부의 각종 개혁법안을 되돌리는 법개정 작업을 벌이고 있는 데 대해서도 일각에서는 추후 발생할 부작용 등에 대해 충분한 검토 없이 밀어붙일 경우 ‘뿔을 고치려다 소를 죽이는 식’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62세로 낮춘 교원정년을 63세로 연장하는 교육공무원법 개정안, 내년부터 시행키로 한 건강보험 재정통합을 백지화하는 내용의 국민건강보험법, 일정 규모 이상의 남북협력기금 사용시 반드시 국회 동의를 거치도록 하는 내용의 남북협력기금법 개정안 등은 모두 논란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 사안들.

▼관련기사▼

- 홍사덕의원 "견제-협력 조화 국가안정 주도"

따라서 한나라당이 수의 우위를 바탕으로 법안통과를 강행하려 할 경우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우려의 배경이다.

민주당 조순형(趙舜衡) 의원은 “한나라당이 그동안 요구해 온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가 이뤄진 만큼 이제 한나라당이야말로 당략을 생각하기에 앞서 원내 제1당으로서 국민 다수의 바람이 무엇인지를 반영하는 상생의 정치를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 이후 정국에서 한나라당에 던져진 또 다른 화두는 ‘1인 보스정치’로 상징되는 종래 당 운영의 틀을 어떻게 바꾸어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경희대 임성호(林成浩) 교수는 “대통령이 당파정치에서 손을 떼겠다고 하는 마당에 야당이 한 사람의 보스에 의한 획일적 구도에 묶여 있으면 지지를 얻을 수 없다”며 “한나라당 내에서부터 세몰이나 군림하는 방식이 아닌 설득과 대화에 기초한 새로운 리더십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무엇보다도 한나라당이 야당으로서 정치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도하려면 당리당략을 떠나 국민을 바라보며 국정을 풀어가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고려대 서진영(徐鎭英) 교수는 “현 정권의 임기가 끝나려면 1년 이상 남아 있는 만큼 국정 안정성을 부여해줄 필요가 있다”며 “한나라당은 원내 제1당으로서 국정의 ‘아젠다 세팅(Agenda Setting·의제 설정)’을 통해 새로운 틀을 마련하는 노력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송인수·박성원기자>i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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