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착잡한 '6·25 맞이'…별다른 기념행사 안하기로

  • 입력 2001년 6월 24일 18시 45분


군이 그 어느 때보다도 뒤숭숭하고 착잡한 분위기에서 6·25 전쟁 51주년을 맞고 있다.

북한 상선의 잇단 영해 침범에 대한 군의 소극대응 논란에 이어 군 수뇌부의 골프 파문까지 겹쳐 정치권과 여론의 눈총이 여간 따갑지 않기 때문이다.

군은 25일 별다른 기념행사 없이 하급부대에서 진지 사수 결의대회를 갖는 수준에서 조용히 하루를 보낼 계획이다.

이날 오전 예정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전방부대 방문계획도 장마전선의 북상으로 취소됐다.

군은 지난해에는 6·25 50주년을 맞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규모 기념식을 가졌다. 특히 정부의 대북 화해 협력정책을 힘으로 뒷받침함으로써 6·15 남북공동선언을 가능케 한 든든한 주체임을 자임했었다. 6·25를 반공(反共)만을 외치는 ‘전쟁 기념일’이 아니라 평화와 화해를 위한 군의 역할을 인식케 하는 날로 삼았다.

그러나 올해 군의 모습은 대조적이다. 북한 상선의 영해 침범에 대한 군의 대응이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따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권 내부에서조차 군을 비판하고 군 수뇌부에 대한 문책론까지 내놓자 사기마저 바닥이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주 말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에 쇄도한 시중의 루머 확인전화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23, 24일 여의도 증권가 등에는 ‘1주일 전쯤 비무장지대(DMZ)에서 북한군과 총격전이 발생해 아군병사 1명이 사망했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유포되면서 군에 이를 확인하는 전화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합참 관계자는 “가뜩이나 군의 사기가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난데없는 루머까지 나돈 것은 국민의 군에 대한 불신을 반영하는 것”이라면서 “도대체 군의 위상이 어디까지 추락할지…”라며 말끝을 맺지 못했다.

24일 새벽 북한 어선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했다가 해군의 경고사격을 받고 물러난 사건을 두고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이 일제히 “군이 적절히 대응했다”고 긍정 평가한 데 대해서도 군 관계자들은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 장성은 “정치권이 군함이든 민간상선이든 상관없이 ‘사격을 해야만 평가하겠다’는 극단적인 단순논리로 군의 작전을 이해하려 한다”고 말하고 “군은 전쟁에 대비한 조직이기도 하지만 전쟁으로 가지 않도록 노력하는 조직이기도 하다는 점을 인식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철희기자>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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