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셈 서울선언의 의미]EU-북 관계개선 발판 마련

  • 입력 2000년 10월 20일 19시 05분


20일 제3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 채택된 ‘한반도 평화에 관한 서울선언’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급진전되고 있는 남북관계에 대한 ASEM의 축복과 격려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 문서가 발표되기까지의 과정에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건전한 일원으로 자리잡을 때까지 남한이 겪어야 할 딜레마가 그대로 녹아 있다.

A4 용지 한 장 반 분량에 불과한 ‘서울선언’ 5개항은 4월경 처음 협의가 시작된 뒤 회원국들간의 의견이 엇갈려 10여 차례나 수정 작업을 벌여야 했다. 정부는 선언에 대한 논의가 공개적으로 이뤄질 경우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고 판단해 개별국가와 1대 1 비공개 협의를 벌였다.

6월 남북정상회담의 성과 등을 반영한 초안이 9월 서울에서 열린 고위관리회의에서 간신히 작성됐다. 그러나 “북한이 대량살상무기(WMD) 위협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의 포함 여부를 놓고 회원국들이 찬반양론으로 갈려 격론을 벌였다. 결국 한국정부의 설득과 조정으로 문제의 문구는 ‘한반도와 역내의 평화와 안보를 증진하고 신뢰구축에 기여하고자 하는 ASEM 회원국들의 의지를 확인했다’는 식으로 완화됐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채택된 ‘서울선언’은 ‘선언’ 이상의 실질적 의미를 담고 있다.

선언에서는 “대화, 인적 교류, 경제적 연계뿐만 아니라 북한의 다자대화 참여를 통해 ASEM과 북한간 및 개별회원국과 북한간의 관계를 개선해 나가는 노력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영국 독일 등 유럽국가들은 이런 선언을 기다렸다는 듯이 서울에서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를 발표했다.

유럽연합(EU)은 그동안 △인권 등 인도적 문제 해결 △대량살상무기 개발 포기 등을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제시해 왔다. 따라서 유럽국가의 대북 수교 표명은 ‘북한이 그런 조건을 충족하면 수교한다’는 기존의 수동적 대북정책에서 ‘관계를 정상화하며 그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전향적 정책으로 전환했음을 시사한다.

정부 관계자는 “앞으로 북한이 비회원국 자격으로라도 ASEM의 협력사업 등에 참여하게 되면 ASEM은 북한의 대 EU 외교 등을 위한 중요한 창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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