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때아닌 양보 논쟁]南과 北 누가 더 양보했나?

  • 입력 2000년 9월 15일 18시 34분


‘정부가 북한에 너무 끌려 다닌다’는 한나라당 등의 비판과 관련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직접 “북한이 오히려 양보를 많이 했다”고 주장함에 따라 남북간에 누가 더 많이 양보했느냐 하는 ‘양보논란’이 정치권에 한창이다.

한나라당 권철현(權哲賢)대변인은 15일 김대통령의 ‘북한 양보론’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고 비난했다. 그는 ‘민심을 모르는 대통령의 궤변’이라는 논평에서 “김대통령이 북한이 그동안 고집해온 남북대화의 선결조건(주한미군 철수, 연방제 실시,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철회한 것을 양보 사례로 꼽았다”고 지적한 뒤 “이는 북한의 일방적 주장으로 양보로 간주할 수 없다. 만약 양보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따를 생각이었느냐”고 반문했다.

권대변인은 이어 “6·25 침략, 아웅산 학살, KAL기 폭파 등 각종 테러 행위에 대한 사과를 얻어내지 못했고, 소떼 비료 달러를 한없이 퍼주면서 회담 때마다 북에 끌려 다녔으며, 정상회담 일방연기와 회담 중 ‘돌아가라’는 협박에도 한마디 항의조차 못했다”며 “이게 양보가 아니면 앞으로 무엇을 더 양보해야 하느냐”고 쏘아붙였다.

한나라당은 이밖에도 북한의 식량사정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고 북한의 쌀 지원 요구를 검토 없이 받아들이고, 비전향장기수를 대거 북송(北送)하고도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 등이 대표적인 북에 대한 ‘지나친 양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와 민주당의 입장은 이와 정반대다. 북한이 남북정상회담 후 남한의 체제를 인정하고 관계개선에 동참하고 있는 것 자체가 실질적 양보라는 것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이 6·15공동선언 제1항인 ‘자주적 통일’에 합의한 것도 따지고 보면 남한에 주한미군이 있든 없든 대화를 진행하겠다는 의사 표현으로 볼 수 있다”면서 “북한이 기존의 남북대화 선결조건을 내세우지 않은 것만도 큰 진전”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민주당은 또 이산가족 상봉의 지속적 추진과 장관급 회담의 정례화 등을 통해 북한이 과거의 폐쇄적 체제 운영을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며 이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이 남북국방장관 회담에 합의한 것도 한반도 긴장완화의 실질적 조치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과거 동유럽의 경우에서 보듯, 사회주의 국가는 자본주의의 돈이 들어가면 자연히 개방노선을 취할 수밖에 없다”면서 “남북경협이 단기적으로는 북한에 대한 일방적 시혜의 성격이 없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이끄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송인수·김영식기자>i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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