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청탁 백태]직접 전화… 실세 통해…

  • 입력 2000년 9월 9일 17시 05분


선거비용 실사 개입 의혹사건과 한빛은행 불법대출 사건 등을 둘러싸고 정치인들의 민원과 청탁에 대한 뒷공론이 많다. 민원과 청탁은 우리 정치현실에서 정치인들이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일종의 멍에이자 유혹 같은 것. 일반적으로 알려진 청탁유형들을 살펴본다.

▽“필요하면 실무자에게도 전화한다”〓인사, 이권 등의 청탁은 청와대, 각 부처 장관, 정부투자기관장들과 직접 ‘대화’가 가능한 몇몇 여권실세들에게 집중되기 마련이다. 실세들은 반드시 관철해야 할 청탁건이 있을 때 관련 기관장을 직접 만나거나 전화를 걸어 “내 측근을 보낼 테니 얘기 좀 들어달라”는 방식으로 ‘압력’을 넣는다고 한다. 한 실세 보좌관은 “‘실무자’를 보낼 때도 가급적 해당 기관장과 안면이 있거나 학연 지연이 있는 사람을 보낸다”며 “어떤 점에선 실세라는 위치보다 안면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세 국회의원들은 때로 ‘일개 지점장’보다 못한 현장 실무자에게도 직접 전화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이 보좌관의 설명이다. 민원인이 “위아래 다 얘기해 놨으니, 실무자에게 전화 한번이면 된다”고 부탁할 때 그런 일이 있다는 것.

▽실세끼리 청탁 갈등도?〓현 정부 초기엔 정부산하기관장 등 여권의 모든 인사청탁은 당시 청와대 실세였던 모인사를 거쳐야 했다. 당시엔 대통령의 최측근도 이 인사에게 어렵게 부탁할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당 쪽 사람들이 ‘피해’를 봤다는 것.

그러나 인사스크린을 담당하는 민정수석실이 비서실장 산하에서 독립한 지금 상황은 그때와는 다소 다르다는 얘기다.

우선 신광옥(辛光玉)민정수석의 임명과정에서부터 여권 실세들간에 갈등이 있었고 당시 다른 사람을 밀었던 A씨측은 지금까지도 인사면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한다. 반면 신수석과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B씨는 “인사는 B씨를 거쳐야 한다”는 풍설이 나돌 만큼 청탁이 밀려들고 있다는 것. 당사자들은 펄쩍뛰지만, 실세층과 가까운 한 민주당의원은 “지난번 법정관리에 들어간 H사의 법정관리인 선임을 둘러싸고 A, B씨 측이 각각 다른 사람을 밀며 다툰 사실이 알려져 내부에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청탁 거절할 땐 “전화왔다고만 해달라”〓정치인들이 무조건 청탁을 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애당초 얘기가 안되는 엉터리거나, 뒤탈이 생길 수 있는 문제성 민원은 상대방이 기분상하지 않게 거절한다. 민원인 앞에서 보좌관을 불러 메모를 시키며 챙길 것을 지시하거나, 해당기관에 전화를 걸되 “내 전화를 받았다는 것을 민원인이 알도록만 해달라”고 부탁하는 정도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윤승모기자>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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