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선언/5대원칙 전문가 진단]"이산문제 다른문제와 연계말아

  • 입력 2000년 6월 15일 19시 29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14일 합의 서명한 ‘6·15 선언’ 5개항은 과연 한반도의 냉전구조를 해체하는 데 초석이 될 수 있을까. 항목별로 전문가들의 분석과 평가를 들어본다.》

▼통일 자주적 해결▼

▽강성윤(姜聲允)동국대 북한학과 교수〓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일단 말 자체만을 놓고 보면 당연한 이야기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 민족의 분단을 우리가 주체적으로 해결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북한이 그동안 지속적으로 자주적인 통일을 주장해왔다는 점에서 국내에서 그 해석을 놓고 일부 논란이 일 가능성이 있다.

이 조항이 남북공동선언 합의서의 첫번째 조항으로 들어간 것은 북한 주장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북한은 꾸준히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 3원칙을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북한은 통일을 민족문제의 측면에서 접근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곧 이 조항에 근거해 주한미군 철수나 외세 배격을 언급할 가능성을 남겨놓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동안 북한은 평화문제에 관한 한 미국과 해결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남한이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입장에서다. 때문에 우리로서는 주한미군문제가 한국과 미국과의 문제라는 점을 다시 한번 분명히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덧붙여 눈여겨볼 대목은 자주적 통일을 강조함으로써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통일을 이끄는 지도자라는 점을 부각시키려 한 것 같다는 점이다.

▼연합-연방제 인정▼

▽허문영(許文寧)통일연구원 통일정책실장〓통일에 대한 남북정상의 합의는 한민족의 미래 지향점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합의서에 나타난 정신은 크게 화해와 통일 문제라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화해는 ‘20세기 과거 청산’이고, 통일은 ‘21세기 방향 제시’라는 점에서 한민족의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합의서 1, 2 항 모두가 통일 문제를 담고 있는 것은 북한측으로 봐서는 이번 정상회담이 경제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을 상징하고 싶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통일 문제를 강조함으로써 이번 회담이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정통성 강화와 위상 제고 차원에서 열린 회담임을 시사하려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연합과 연방제에 대한 언급이다.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는 것은 북측의 연방제 주장에도 불구하고 남북간의 ‘공존(共存)’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는 북한 정권이 주민들의 통일 열망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완곡한 표현으로 공존을 인정한 것에 다름 아니다. 정부가 강조하는 화해와 통일의 핵심이 ‘공존’이라는 점에서도 우리가 처음 가졌던 기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이해된다.

▼이산가족 상봉▼

▽제성호(諸成鎬)중앙대교수〓남북공동선언은 가족 친척 방문단 교환의 시범적 실시, 비전향장기수 문제 해결, 인도적 문제 해결 등 3개 기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이산가족 문제를 풀기 위한 후속 실무 협상의 방향타를 제공하는 기본틀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번 선언은 과거의 어떤 합의보다 실천성이 강하다. 92년 5월 남북기본합의서 타결을 기념하기 위해 ‘이산가족 노부모 방문단 및 예술단 교환’에 합의했었지만 이행되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남북 정상이 보증했기 때문에 반드시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한번으로 그쳐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계속되려면 당국자 회담이나, 남북적십자회담, 또는 실무 협의가 계속돼야 한다. 또 이산가족 상봉 사업의 지속을 위해 이산가족의 범위와 상봉의 시기, 절차, 방법 등에 대한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

공동선언에서 이산가족 문제를 ‘인도적 문제’라고 규정했듯이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결코 다른 문제와 연계해서는 안된다.

북측으로선 이산가족 상봉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이를 감안해 공동선언 중 다른 분야의 이행과 보조를 맞춰 단계적으로 진행시켜 나가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경협-문화교류▼

▽동용승(董龍昇)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장〓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는 천차만별이었을 것이다. 구체적인 것을 바라는 사람도 있고, 틀만 갖추면 된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것이 적절히 배합된 것 같다. 아주 중요하고 원칙적인 문제를 앞에 세우고 실천적인 문제를 뒤에 넣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교류문제는 원칙적인 것을 지적했고, 특히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이라는 표현을 쓴 것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단기적으로는 대북 경제지원의 당위성을 제공해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통일비용 분담이라는 개념까지 확장해 나갈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고 본다. 향후 경제교류 전망은 상당히 밝다고 볼 수 있다.

▽임권택(林權澤)영화감독〓문화교류가 확대되면 남북한간의 이질감을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남북이 분단의 아픔을 담아내는 합작영화를 만든다면 체제를 달리했던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데올로기를 떠난 영화나 연극을 공동으로 제작하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높다.

사회문화 분야는 정치 군사분야와 달리 남북이 거부감을 덜 갖고 다양하게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고 생각한다.

▼당국대화 재개▼

▽유호열(柳浩烈)고려대 교수〓이번 회담의 중대한 성과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정상적인 지도자로서 활동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김위원장은 자신의 활동이 남한에 어떻게 보도되는지 관심도 많고 이해도 깊은 것 같다. 이번 회담을 통해 김위원장은 서울 방문이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을 듯하다.

특히 김대중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용감하다고 평가한 만큼 본인도 ‘용감하게’ 서울을 방문할 마음을 갖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적절한 시기’라는 전제를 단 것은 이산가족 교환 방문이라든지 경협의 토대가 마련되는 등의 계기를 보고 판단할 것같다는 얘기다. 김위원장은 또 피폐한 북한 경제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라도 움직여 볼 필요성을 느낄 것이다.

당국간 후속 대화는 별도 회담에서 투자보장협정 체결의 필요성이 제기됐듯이 북한의 경제적 필요성 때문에라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형식은 남북기본합의서에 명시된 남북경제공동위원회 방식이 될 수도 있고 다른 방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문화분야의 교류를 위해선 사회문화공동위가 구성될 수도 있고 판문점연락사무소 같은 것이 생길 수도 있다. 서울 평양 상주대표부 설치는 아직은 좀 먼 얘기가 아닌가 싶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