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대의원 57% 상임委 교체…국회 전문성 "글쎄요?"

  • 입력 2000년 5월 21일 19시 44분


여야는 2월 정치개혁법안을 통과시키면서 국회의원들이 상임위에서 책임의식과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의미 있는 제도를 마련했다. 법안실명제와 기록표결제의 도입을 비롯해 위원회 안건의 상설 소위 회부와 소위원회 회의록 작성 의무화 등은 그 예.

하지만 전문가들은 상임위 교체비율이 50%가 넘는 우리 국회의 현실 속에서 의원들의 전문성 제고는 요원하다고 입을 모은다.

▼22차례나 바꾼 의원도▼

한국의회발전연구회(이사장 오연천·吳然天·서울대 교수) 소속 박찬표(朴璨杓)국회도서관 연구관이 뽑은 국회의원들의 상임위 교체율을 보면 문제는 심각하다. 15대 국회의원 중 57.0%가 자신의 4년 임기 중 상임위를 교체했다. 14대 국회의원들의 교체율은 58.4%에 이르렀다. 절반 이상의 국회의원들이 4년간 두 개 이상의 상임위를 거쳤다는 얘기다. 4년 임기를 마친 뒤 다시 당선된 의원들의 상임위 교체율은 더욱 높다. 15대 국회에 당선된 재선의원 중 62.0%가, 14대 국회에 당선된 재선의원 중 68.7%가 상임위를 변경한 것으로 나타났다.

15대 국회에서 10회 이상 상임위를 ‘밥 먹듯이’ 바꾼 의원들도 상당수. 자민련 이상현(李相賢)의원은 무려 22차례나 상임위를 바꾸었고, 국방부장관과 국가정보원장을 역임한 민주당 천용택(千容宅)씨는 21차례나 바꾸었다.

▼전문가 "상임위원 임기 늘려야"▼

15회 이상도 8명, 10회 이상도 16명에 이르고 있다. 물론 상임위의 잦은 교체가 의원 개인의 의지에서 비롯됐다고 보기는 힘들다. 당적을 옮겼거나 장관직을 겸하게 되는 경우 상임위를 바꿀 수밖에 없는 처지가 있긴 하다. 그렇다고 해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예에 비춰 교체비율이 너무 잦다는 것이 중론이다.

때문에 전문성 제고를 위해서는 상임위원의 임기를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박찬표 연구관은 “당 지도부가 의원들의 상임위 선임권을 장악함으로써 의원들의 자율성을 통제하고 있다”며 “상임위 임기를 4년으로 연장하고, 상임위 배정도 고참 우선원칙을 적용해야 하며, 미국과 같이 공식적인 상임위 위원 선임기구를 만들어야한다”고 말했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외국에선 어떻게 하나◇

국회의원들이 ‘힘있는’ 상임위 위원회에 가기를 원하는 것은 외국도 마찬가지. 상임위 배정을 둘러싸고 당지도부에 로비를 하는 등의 잡음이 심심찮게 생긴다.

미국의 경우 이같은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민주 공화당 모두 당내에 20여명 내외로 구성된 ‘상임위배정위원회’를 설치해 공정성을 높인다. 상임위배정위원회에는 소속의원들의 출신주 대표 등이 참여, 지도부의 ‘일방통행’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도 재선의원이 되면 43%(96년 민주당 하원의원 기준) 정도가 상임위를 바꾸는 등 상임위가 붙박이는 아니다.

그러나 선수가 높아질수록 상임위를 바꾸는 비율이 현저하게 감소해 전문성을 중시한다. 3선의원만 돼도 상임위 변경비율은 16.2%에 불과하다.

내각책임제인 일본의 경우는 국회의 동일 상임위원회나 여당 내 ‘정조회’(정책위원회 성격)의 동일 ‘부회’(분과위 성격)를 지키면서 경력을 쌓는 것이 향후 ‘출세’에 중요한 기반이 된다. 즉, 특정 정책분야에서 능력을 평가받아야만 장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의원들도 자연스럽게 한 상임위를 유지하려 한다.

일본에서는 이처럼 동일 부회나 상임위에서 전문적 경력을 쌓은 의원들을 ‘족(族)의원’이라고 부른다. 족의원은 최근 들어 ‘정경유착의 주범’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으나 행정부에 의한 정보와 지식독점을 무너뜨리고 정책결정 과정을 다양화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결국 국회의원들의 전문성 확보를 위해서는 상임위 배정에 객관성과 공정성을 높이고 한 상임위에서 꾸준하게 경력을 쌓아가는 의원을 우대하는 관행의 정착 등 제도적 개선이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윤승모기자>ysm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