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북한 왜 응했을까?

  • 입력 2000년 4월 10일 23시 26분


북한이 남한정부를 대화상대에서 제외시키는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정책을 버리고 남북정상회담을 전격 수용한 것은 북한 지도부의 면밀한 대내외 정세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대내적인 이유로는 심각한 경제난 해소가 급선무라는 북한 수뇌부의 현실적인 판단이 작용했으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 북한은 98년9월 헌법개정을 통해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을 국가최고직책으로 규정한 뒤 ‘강성대국(强盛大國)’의 기치 아래 경제재건을 추진했다. 그러나 식량난, 에너지난, 외화난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에 부닥친 것. 북한이 최고인민회의를 정례적으로 개최하는 등 정치상황을 안정시켰지만 매년 200여만t이 부족한 식량난은 북한 정권유지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되기도 했다.

북한이 올해초부터 적극적으로 대외관계 개선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 1월4일 이탈리아와 수교관계를 맺은 뒤 미 일을 비롯해 제3세계 국가들과의 관계정상화에 나선데 대해서도 국제사회에서는 경제적인 도움을 받기 위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실제 북한은 미국과 캐나다 등 대외관계 개선과정에서 상대국들에 다양한 경제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 쪽에는 1억달러의 지원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북한이 결국 남북정상회담으로 눈길을 돌린 것은 실질적인 지원은 남한으로부터 받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을 내렸기 때문인 듯하다. 북한을 방문한 외국인들이나 미 일 등도 “남한과의 관계개선에 우선적으로 나서라”고 권유했던 것. 특히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9일 ‘베를린선언’을 통해 남북당국 간 경제협력을 추진하자며 밝힌 대북지원구상을 북한이 외면하기 어려웠다는 게 정부당국자들의 시각이다.

북한이 정상회담 합의를 위한 비밀접촉 과정에서 대규모의 지원을 요청했다가 재차 별다른 조건없이 정상회담에 우선적으로 응한 점도 흥미롭다. 이는 정상회담이 개최된 이후 한국정부로부터 상당량의 대북지원을 기대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 또 당창건 55주년(10월10일)을 맞는 북한이 ‘김정일시대’의 청사진을 북한주민들에게 제시하기 위해 남한의 경제지원을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높다.

‘4·13’ 총선을 앞둔 시점에 정상회담 개최를 공동발표할 경우 야당이 맹렬한 공격을 퍼부으리라는 점을 감안하지 않았을 리 없을 북한측이 왜 발표시점에 합의를 해주었는지도 큰 관심사 중 하나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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