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秘線접촉과 뒷얘기

  • 입력 2000년 4월 10일 19시 44분


남북정상회담 개최합의가 성사된 배경에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3월9일 남북당국 간 경제협력을 제의한 ‘베를린선언’에 대한 북한측의 관심이 가장 크게 깔려 있다는 게 정부당국자들의 평가다.

○…정부당국자는 “북한이 3월15일 노동신문 논평을 통해 대결정책을 벗어나 실제 행동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보인다면 대화에 임할 것”이라며 당시로서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이같은 입장이 본격적인 남북접촉에 나서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고 설명.

이 당국자는 “처음에는 북한 노동신문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해석했었다”며 “그러나 북한과 17일 비공개 남북접촉을 가졌다는 점에서 오히려 노동신문의 논평이 결정적인 남북접촉의 발판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분석.

○…이번 남북정상회담 합의는 남북간 비밀접촉이 끝까지 노출되지 않고 보안이 유지됐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정부측은 자평.

남북 비밀접촉 특사로 활약한 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부장관도 “김대통령께서 비밀접촉 초기부터 남북문제를 담당하는 통일부 장차관이나 통일정책실장이 실무접촉에 나서면 결론에 도달하기도 전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며 나에게 특사를 맡으라고 지시했다”며 이번 특사접촉이 철통같은 보안속에서 이뤄졌다고 소개.

여기에는 지난해 6월22일 개최됐던 남북차관급회담이 비밀접촉과정에서 공개됨으로써 어려움을 겪었다는 정부측 판단이 고려됐다는 후문. 특히 남북 간의 중대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한 9일 저녁부터 남북관계를 담당하는 정부의 핵심관계자들은 휴대전화까지 꺼놓으면서 대외접촉을 피하는 등 극도로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김대통령과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은 잇따라 동아일보와 회견을 갖고 남북정상회담의 개최 가능성에 대해 언급.

김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동아일보와의 창간 80주년 특별회견에서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남북 간에 상당한 수준의 대화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며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자세히 말하기는 곤란하다”고 말했었다.

한 당국자는 “북한측이 공동발표하기로 했던 합의를 뒤집을지 몰라 조심스러웠지만 10일 오전 북한방송에서 ‘중대방송’ 예고를 본 뒤에야 가까스로 안심했다”고 후일담을 소개.

○…정상회담 성사 사실이 발표된 10일 정부 주변에서는 북한의 백남순(白南淳)외무상이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합의되기 불과 사흘전인 5일(한국 시간) 베를린에서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한 것도 화제로 대두.

백외무상은 남북정상회담의 전망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금은 대화가 이뤄질 수 있는 조건과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 않다”며 남한-미국-일본 등의 공조 파기 등 정상회담의 조건을 일일이 열거.

이와 관련, 정부 내에서는 백외무상이 남북 간의 정상회담을 위한 비공식접촉 내용을 알면서도 합의시의 효과 극대화를 위해 딴청을 피웠을 것이라는 관측과 북한이 대북 접촉의 사안에 따라 ‘점조직 방식’의 다양한 라인을 활용해왔던 점을 지적하며 “백외무상 자신도 남북 간의 비공식접촉 사실을 몰랐던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김영식기자>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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