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정치(하)]비탈에 선 한나라 『우리는 누구?』

  • 입력 1998년 12월 29일 19시 30분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해 야당으로 전락한 한나라당은 올 한해 야당으로 거듭나기 위한 진통을 겪었다.

‘여당 불패(不敗)’의 장기집권 체제 아래 안주해온 한나라당은 50년만의 정권교체로 권력의 보호막이 사라지자 태생적(胎生的) 한계를 그대로 드러냈다.

리더십 부재, 자금난, 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장의 이탈로 인한 조직기반 붕괴 등 3중고를 겪은데다 이질적인 구성세력의 내분이 동시에 표출됐다. 여기에다 ‘나라를 망친 당’이라는 국민의 냉담까지 겹쳐 1년간의 야당연습은 말 그대로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수난이었다.

이런 한나라당의 수난은 수치로 여실히 드러난다.

올 한해 여당으로 당적을 옮긴 국회의원만 27명에 달해 작년말 1백62석이던 한나라당의 의석은 1백36석(1석은 선거법위반으로 의석상실)으로 줄어들었다. 여소야대(與小野大)가 여대야소(與大野小)로 역전된 것이다.

‘6·4 지방선거’ 이후 탈당한 지방자치단체장도 광역단체장 1명, 기초단체장 17명에 달했다.

중앙당 중심체제인 정당구조 속에서 정당운영의 젖줄이라 할 정치자금의 수지상황을 들여다보면 한나라당의 어려움은 더욱 피부에 와 닿는다.

여당시절 지정기탁금과 국고보조금 등을 합쳐 중앙당 차원에서만 연간 4백억원 이상을 썼던 한나라당은 야당으로 처지가 바뀐 이후 거의 국고보조에 의존, 1백20억원 안팎으로 살림규모를 줄였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사무처 요원들을 3교대로 4개월간 무급휴직토록 하는 고육책까지 짜내야만 했다.

이같은 외형적인 변화와 함께 한나라당의 가장 큰 고민은 대선 패배 이후 정체성을 상실한 채 아직도 방향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야의 첫 힘겨루기였던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의 처리문제에서 ‘의원 빼내가기’ ‘정치인 사정(司正)’ ‘총풍(銃風)’ ‘세풍(稅風)’사건에 이르기까지 주요 국면마다 당내에서 항상 온건론과 강경대치론이 대립,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은 정체성 상실의 단적인 예였다.

이처럼 정당의 존재이유를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지역감정에 더욱 의존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올들어 실시된 재 보궐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선전한 주요한 원인이 지역감정과 ‘반(反)DJ(김대중대통령)’정서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지역감정에의 의존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지역당’으로의 전락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바로 한나라당의 원초적 딜레마다.

이와 함께 당의 혼란을 추스를 리더십의 부재도 한나라당의 방황을 가속화한 결정적 원인으로 지적된다.

‘8·31’전당대회에서 ‘대안부재론’을 앞세워 이회창(李會昌)총재가 당의 간판으로 복귀한 이후에도 한나라당은 대여(對與)전략과 정보 부재로 여당의 의원빼내가기와 사정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총재측은 자금동원력과 조직장악력에 있어서도 한계를 드러내 당내 비주류는 물론 ‘이총재 만들기’에 앞장섰던 김윤환(金潤煥)전부총재 등 주류연합군과 중진세력들도 최근에는 이총재측과 거리를 두고 있는 형편이다.

이같은 야당의 수난에는 ‘밀어붙이기식’ 정국운영을 해온 여권의 책임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하려 하기보다 힘으로 압박해온 여권의 태도가 야당의 강경대응과 부(負)의 함수관계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이총재도 “사실상 야당은 모든 것을 양보했는데 여당측은 승자의 금도(襟度)를 보이지 않고 있다. 새해에는 비상한 각오로 대처하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아무튼 한나라당은 새해 들어 예상되는 여권의 의원빼내가기 2차공세로 또다시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1년간 야당연습을 거친 한나라당이 이총재의 표현대로 ‘비상한 각오’를 어떻게 구체화할지 주목된다.

〈이동관기자〉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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