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정치 (중)]내각제 氣싸움…2與 ‘밀월’끝나가나?

  • 입력 1998년 12월 28일 20시 01분


공동여당인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그동안 매달 개최해온 고위당정회의를 12월에는 열지 못했다. 12월 당정회의 소집권자인 자민련이 회의 날짜를 21일로 정해 국민회의에 통보했으나 법안처리에 사사건건 제동을 거는 ‘우당(友黨)’에 불만을 느껴왔던 국민회의가 당정회의를 거부해 버린 것이다.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국민회의 고위당직자회의에서는 자민련에 대한 섭섭한감정이 여과없이 쏟어졌다는 후문이다.

당정회의의 무산은 공동정권 1년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조그만 단면에 불과하다. 올해 4월까지만 해도 양당의 공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정권교체의 감격으로 양당이 의기투합한데다 여소야대(與小野大)구도로 인한 열악한 환경 때문에 마찰을 빚을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양당의 ‘밀월(密月)’은 오래가지 못했다. ‘6·4’지방선거를 계기로 공동정권의 구조적 적폐라 할 수 있는 ‘밥그릇 싸움’이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양당은 특히 강원도지사 후보 공천을 놓고 마지막까지 험한 감정 싸움을 벌이다 선거에서 패배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어 7개 지역에서 실시된 ‘7·21’재 보궐선거에서는 지방선거와 같은 공천 대립은 없었으나 야당에 3대4로 패배했다. 재 보선의 패배는 두 여당의 팽창화 전략으로 이어졌고 양당은 치열한 야당의원 ‘빼오기’경쟁을 벌였다.

9월 정기국회에 들어서면서 양당의 정책 균열이 본격화됐다. 주로 정부와 국민회의가 주도하는 ‘진취적’ 현안에 대해 자민련이 ‘보수적’ 이의를 다는 식이었다. △공정거래위 계좌추적권 보유 △교원정년 단축 △교원노조 허용 △성인전용 영화관 설립 등이 그것이다.

자민련은 또 금강산 관광으로 대표되는 정부의 각종 대북 햇볕정책에 대해 사사건건 곱지않은 반응을 보였다. 최장집(崔章集)교수의 이념논쟁이 불거졌을 때는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가 직접 나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공격했다.

자민련의 이같은 자기 목소리 내기에는 나름의 절박한 사연이 작용했다. 국민회의가 주도하는 정책 드라이브를 조용히 따라가다 보니 자민련의 보수적 컬러가 퇴색해 당지지도가 3∼4%대에 머무는 등 ‘존재의 위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특히 내각제 공론화를 앞둔 마당에 마냥 밀리다가는 손 한번 못쓰고 내각제 합의가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자민련은 정부와 국민회의의 국정 운영방식에도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1인주도식 정책 추진이 대부분이어서 양당간의 사전 조율 과정이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역으로 자민련에 대한 국민회의의 불만도 간단치 않다. “의무는 다하지 않고 권리만 찾으려 한다”거나 “양당간 합의가 이뤄져도 지켜지지 않는 일이 허다하다”는 볼멘소리들이 그것이다.

양당의 기(氣)싸움은 내각제 개헌문제가 불거지면서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정권교체 1주년 기념식에서 김대통령이 내각제 개헌의 ‘시기조절론’을 언급하자 김총리는 ‘약속이행’과 ‘신의’로 맞받아쳤다. 이 때문에 공동정권이 자칫 파국에 이를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공동정권 1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이념적 정서적 기반이 판이한 두 정당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연합정권을 출범시켜 큰 불상사 없이 한해를 마무리한 것만 해도 대단한 성과라는 것이다.

특히 김대통령의 진보적 성향과 김총리의 보수적 이미지를 잘 조화시켜 정책 추진과정에서의 반발을 최소화한 대목은 공동정권의 장점을 잘 살렸다는 지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국민회의 일각에서는 내각제를 둘러싼 갈등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김대통령과 김총리가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송인수·윤영찬기자〉i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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