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3후보 경제해법 충돌안팎]「실명제」얼마나 갈까

  • 입력 1997년 11월 28일 20시 20분


경제위기극복을 위한 처방이 갈수록 뜨거운 대선쟁점으로 대두하는 양상이다. 28일에는 급기야 김영삼(金泳三)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론까지 제기됐다. 경제위기상황도 심각하지만 대선국면의 주도권 선점을 위한 3당 후보간의 신경전이 그만큼 치열하다는 얘기다. 3당 후보는 이날 제각기 다른 처방을 제시하긴 했으나 현 정권이 최대의 개혁이자 치적으로 내세워온 금융실명제의 폐해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세 후보의 처방 중 가장 강력한 것은 김대중(金大中)국민회의후보가 주장한 「금융실명제의 즉각 유보」였다. 이회창(李會昌)신한국당후보와 이인제(李仁濟)국민신당후보는 보완을 주장하는 선에서 그쳤다. 굳이 따지자면 이회창후보 보완론의 강도가 이인제후보 주장보다 다소 강한 편이다. 이회창 이인제후보는 모두 무기명장기채 발행 허용 등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회창후보는 한걸음 나아가 대선 이전에라도 단독으로 국회를 열어 보완입법을 위한 절차를 밟겠다고 주장했다. 경제적 효과라는 측면에서는 세 후보의 주장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 무기명장기채 발행 허용 등은 금융실명제의 사실상 백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만 세 후보가 내놓은 주장의 강도가 달라 보이는 것은 각자 처해진 정치적 입장에서 비롯한 것이다. 불과 얼마전까지 김대통령과 주례회동 등을 통해 국정을 긴밀히 협의해 왔던 이회창후보나 현정권 개혁작업의 일익을 담당했던 이인제후보로서는 당장 유보나 폐지를 주장하기 어려운 처지다. 반면 김대중후보는 단도직입적으로 유보론을 주장함으로써 즉흥적인 개혁의 위험성을 부각하고 청와대와 한나라당을 포함한 여권의 공동책임을 추궁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김후보가 김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운운하며 「강수(强手)」를 들고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즉 김대통령을 직접 겨냥하며 몰아세운 데에는 그 여파로 김대통령 밑에서 당정 고위직을 지낸 이회창후보에게도 정치적 상처를 입히겠다는 의도도 짙게 깔린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청와대는 정치권의 경쟁적이고 무차별적인 비판에대해「국민여론에 편승한 무책임한 정치공세」라고 반발하면서 금융실명제의 기조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청와대는 △경제위기가 금융실명제와 큰 관련이 없고 △정부가 제출한 실명제보완 대체입법안을 처리하지 않은 것은 정치권의 책임이며 △정치권의 주장은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요구하는 금융의 투명화 개방화 방침에 역행한다고 반박한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3당 후보의 뜻이 「금융실명제를 현행대로 존속시켜서는 곤란하다」는 쪽으로 모아졌다는 사실이다. 세 후보는 또 재계의 대출자금 상환유예를 위한 대통령의 긴급명령발동 건의에 대해서도 견해가 일치한다. 따라서 청와대도 더는 외면하기 어렵게 됐다. 청와대가 버틸 수 있는 시한은 대선 때까지라는 게 정치권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결국은 정치권의 논리가 관철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임채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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