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신당의 과제]「YS 망명정권」의혹 큰 부담

  • 입력 1997년 11월 4일 19시 53분


4일 공식출범한 국민신당은 대선후보로 선출한 이인제(李仁濟)전경기지사의 여론조사 지지율에 의존해 대선을 불과 40여일 앞두고 급조된 정당이다. 국민신당의 존립근거는 이후보의 대중적 인기인 셈이다. 따라서 국민신당의 최우선 과제는 사당(私黨)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공당(公黨)으로서의 정체성(正體性)을 확립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국민신당 스스로 강조하고 있는 3김(金)정당과의 차별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김영삼(金泳三·YS)대통령의 막후지원 여부가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후보가 YS를 「정치적 아버지」로 부르고 과거 YS를 추종했던 인사들이 국민신당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데다 이후보의 경선불복―신한국당 탈당―국민신당 창당 등 일련의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여러 가지 정황이 겹쳐 의혹은 쉬 가시지 않고 있다. 신 「가이진김(假李眞金)당」이란 얘기도 나온다. 이후보를 내세웠지만 실제 주인은 김대통령이란 뜻이다. 이런 의혹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실패한 YS」가 「정치적 아들」인 이후보를 통해 국민신당이라는 「망명정권」수립을 꾀하고 있다는 비난이 나올 수도 있다. 또한 이후보의 인기는 그의 검증된 능력보다는 기성정치권에 대한 염증과 세대교체 요구에서 비롯된 반사적인 이익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가변성이 크다.더구나 이후보는 「경선불복」이라는 멍에를 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보의 인기가 여전히 상승세인 것은 현재의 대선구도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따라서 만약 그가 대선에서 패배한다면 국민신당은 또하나의 「반짝정당」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 신한국당내 비주류 관망파들이 국민신당에 합류하기를 주저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도 그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수권능력과 비전을 갖추고 있음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할 것이다. 국민신당이 어느 정도 생명력을 유지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 정치사에 하나의 실험이 될 것이다. 국민신당의 창당으로 대선구도는 더욱 명확해졌다. 즉 DJP연합과 여권에서 갈라진 신한국당 및 국민신당의 3자가 「정립(鼎立)」하는 양상이 됐다. 따라서 앞으로 대선정국은 신한국당과 국민신당이 여권표를 어떻게 분점하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임채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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