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의 그늘’ 해학에 녹인 소설가 최일남씨 별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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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사투리 맛깔난 우리말 표현
장편 ‘거룩한 응달’ 등 40권 펴내
인촌상-이상문학상-은관훈장 받아

시골 사람들의 애환과 산업화의 그늘, 권력에 대한 비판을 맛깔난 우리말로 해학적으로 그린 문단의 거목 최일남 소설가(사진)가 28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전북 전주 출신인 고인은 서울대 국문학과 2학년이던 1953년 단편소설 ‘쑥 이야기’를 ‘문예’에 발표하고, 1956년 ‘파양’이 ‘현대문학’에 추천되며 등단했다. 민국일보, 경향신문을 거쳐 1963년부터 동아일보 기자로 일했다.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작품을 펴냈다. 단편소설집 ‘서울사람들’(1975년) ‘누님의 겨울’(1984년), 장편소설 ‘거룩한 응달’(1982년) ‘하얀손’(1994년), 에세이 ‘기쁨과 우수를 찾아’(1985년) 등 약 40권의 책을 냈다.

고인은 가난한 시골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간 사람들이 겪은 애환과 급속한 산업화의 그늘을 개성 있는 문체로 풀어냈다. 동아일보 문화부장과 부국장을 겸직하던 1980년 신군부의 언론탄압으로 해직됐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장편소설 ‘만년필과 파피루스’(1997년)를 발표했다. 1984년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복직했고 1988년 한겨레신문으로 옮겼다. 2017년 노년의 삶을 응시한 소설집 ‘국화 밑에서’를 내는 등 말년까지 꾸준히 작품을 썼다.

“표현의 틈을 저밀 수 있는 데까지 저며 제일 정확한 말을 골라내야 진국이 된다”고 할 정도로 고인은 우리말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호도깝스럽다’(조급하고 경망스럽다), ‘헤실바실’(흐지부지되는 모양) 등 우리말을 작품에 적극 담았다. 풍부한 속담과 사투리를 사용한 그의 소설 속 어휘를 정리한 ‘최일남 소설어 사전’이 2015년 출간되기도 했다.

고인은 안방, 화장실, 거실 등 집 안 곳곳에 종이와 펜을 두고 문장이나 단어가 떠오를 때마다 메모했다. 그는 “단어 하나를 찾으려고 반나절 넘게 고민한 적도 많다. 자다 깨어 뒤척이다 스치는 게 있으면 불도 켜지 않고 적는다”고 말했다.

이상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01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고, 이듬해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됐다. 1994년 인촌상을 수상했다. 2008∼2010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을 지냈다. 유족으로 1남 1녀와 사위, 며느리 등이 있다. 빈소는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발인은 30일 오전 9시. 031-787-1500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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