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조미료 개척한 ‘味元의 아버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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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홍 대상그룹 창업주 타계

60년 전 첫 번째 국산 조미료 ‘미원’을 개발한 임대홍 대상그룹 창업회장(사진)이 5일 타계했다. 향년 96세.

그가 일본에서 설움을 견디며 제조 방법을 배워 와 만든 미원은 이제 일본을 포함해 10여 개 국가로 수출되고 있다. 대상그룹은 6일 ‘한국 조미료의 아버지’인 임 창업회장의 타계 소식과 함께 “장례는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르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60주년을 맞은 대상그룹은 임 창업회장이 미원을 시작으로 터를 닦은 바이오산업을 미래 핵심사업으로 키우고 있다.

1920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그는 일찍이 사업에 뜻을 뒀다. 무역에 발을 들여 일본을 오가던 그는 일본 상품들이 비싼 가격에 밀수되는 상황에 분개했다. 대상그룹 관계자는 “특히 임 창업회장은 일제강점기에 한국인의 입맛을 길들인 일본 조미료 ‘아지노모토’가 쌀값의 수십 배에 거래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고 전했다.

1955년 오사카로 건너간 그는 조미료 공장에 취업해 어깨너머로 글루탐산 제조 공정을 익혔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1956년 1월 부산에 조미료 공장인 동아화성공업(대상그룹 전신)을 세우고 ‘맛의 원천’이란 뜻의 미원 판매를 시작했다. 1962년에는 회사 이름을 아예 미원으로 바꿨다. 1963년 제일제당공업(CJ제일제당의 전신)이 미원에 맞서 미풍을 내놓았지만 결국 미원이 시장을 제패했다. 제일제당공업을 시작으로 삼성그룹을 일군 고 이병철 전 회장은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세상에서 내 맘대로 안 되는 세 가지는 자식농사와 골프 그리고 미원”이라고 적었다.

임 창업회장은 미원 발효 공법을 토대로 아미노산 제조 기술도 개발했다. 아미노산 중에는 동물성 사료 원료에 쓰이는 라이신이 대표적이다. 미원은 1990년대 초중반까지 라이신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 1위였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라이신 사업을 매각한 대상그룹은 지난해 8월 다시 사들였다.

1987년 장남인 임창욱 현 대상그룹 명예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긴 임 창업회장은 2000년대 초반까지 10여 년 동안 사옥 인근과 집에 마련된 연구실에서 전통 장류를 비롯한 식품 연구에 매진했다. 그는 출퇴근할 때 승용차가 아닌 버스와 전철을 이용했고, 출장을 가면 호텔이 아닌 여관에서 잠을 잤다. 현재 대상그룹 사옥은 1973년 당시 서울 사무소로 쓰던 곳을 확장해 세운 곳으로 43년째 똑같은 건물이다. 나서는 걸 꺼린 임 창업회장의 철학 때문에 대상그룹은 사사(社史)도 발행하지 않았다. 임 창업회장은 1971년 사재 10억 원을 들여 미원문화재단(현 대상문화재단)을 설립했다.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는 사업을 벌이는데 현재까지 162억 원의 장학금을 지원했다.

장례식은 그의 유언에 따라 조문 조의 조화를 모두 사양하고 있다. 유족으로는 아들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과 임성욱 세원그룹 회장, 딸 경화 씨와 사위 김종의 백광산업 회장, 손녀 임세령·임상민 대상 상무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은 8일 오전 7시.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미원#임대홍#대상그룹 창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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