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교양잡지인 ‘과학동아’가 다음 달 창간 30주년을 맞는다. 1986년 1월 발행된 창간호부터 이달 나온 과학동아(360호)의 총 발행부수는 약 1300만 부. 한 줄로 쌓으면 에베레스트 산 높이의 12배에 이른다.
종이매체 위기론이 나오지만 과학동아는 예외다. 다른 잡지들은 광고수익에 기대지만 과학동아는 제값 주고 사려는 독자가 많다. 전체 매출의 90%가 구독료 수입이다. 창간 당시 막내 기자로 출발해 현재 과학동아를 이끌고 있는 김두희 동아사이언스 대표(58)를 최근 서울 용산구 동아사이언스 사옥에서 만났다.
과학동아가 처음부터 수익을 낸 건 아니다. 동아일보 사시(社是)인 문화주의에 따라 창간됐지만 10년 내내 적자를 면치 못했다. 독자들이 “과학동아를 읽고 알게 된 사실이 많았다”며 큰 호응을 보였지만 정작 수익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지루하고 딱딱하게 느껴지는 과학을 재미있게 풀어내는 게 시급했다. 김 대표는 “과학동아는 여성지나 시사지를 경쟁 매체로 삼았다”고 했다. 부엌의 과학을 쉽게 소개하고, 영화·스포츠를 과학과 결합했다. 과학을 친근하게 느끼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이 시도는 적중했다. 외환위기 때 다른 잡지들은 고사 위기에 처했지만 과학동아는 오히려 독자 증가로 흑자 전환하며 안정 궤도에 올랐다.
당시 중견기자였던 김 대표는 여기서 가능성을 엿봤다. 그는 과학동아가 더 성장하려면 분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일부 직원은 반발했다. 구멍가게 같은 잡지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 하지만 그는 “과학 이슈에 적극 대처하고 다양한 시도를 하려면 신문에서 독립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며 밀어붙였다. 당시 오명 동아일보 사장(전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이 이를 지지했고 과학동아는 2000년 동아사이언스로 분사했다.
새로운 시작. 직원은 총 8명이었고 그가 대표를 맡았다. 직원들은 신용등급이 낮아져 은행에서 신용대출도 받기 힘들게 됐다. ‘한국에도 내셔널지오그래픽처럼 번듯한 과학매체가 있어야 한다. 과학동아를 그렇게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다들 버텼다.
김 대표는 이공계 석사 출신의 기자를 중점 채용했다. 대학 시절 토목공학을 전공한 그는 야학을 하는 등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이공계 출신의 기자가 풀어내는 과학 저널리즘도 광의의 교육으로 이들이 과학계와 일반 대중의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이런 예상은 적중했다. 과학동아는 상대성이론과 블랙홀, 빅뱅, 게놈 등 굵직한 과학 이슈를 내보냈고 한반도의 지질, 생물, 공룡 등 한국 특화 콘텐츠를 소개했다. 이 덕분에 과학의 대중화 전문화를 이끌며 과학 저널리즘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본 원전 사고 당시 심층 기사를 발 빠르게 내보내 정문술과학저널리즘 대상(2011년)을 받기도 했다.
김 대표는 앞으로 종이매체를 넘어 다양한 방식으로 과학 콘텐츠를 개발할 계획이다. 용산 동아사이언스 사옥에서 운영하는 과학동아 천문대나 과학동아 필진인 과학자와 독자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과학동아 카페’, 역대 과학동아를 모바일·PC로도 볼 수 있는 ‘D라이브러리’가 그런 계획의 일부다.
“종이매체만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을 독자들에게 줄 겁니다. 모든 사람에게 즐거운 과학을 선사하겠다는 가치를 지키면서도 콘텐츠를 혁신해 잡지도 100년 기업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습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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