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제공장 ‘시다’ 40년, 어머니께 바칩니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 첫 은사자상… 다큐영화 ‘위로공단’ 작가 임흥순씨

한국인 최초로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수상의 영예를 안은 임흥순 작가. “가족을 위해 희생한 모든 어머니께 죄송함과 감사함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베네치아=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세계 예술 파격의 중심에 한국 작가가 섰다. 9일 열린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 시상식에서 본전시인 국제전 초청작가 임흥순 씨(46)의 ‘위로공단’이 2등상인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세계 최대의 미술전에서 95분 길이의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가 본상을 받은 것, 전통적으로 35세 이하 젊은 예술가에게 주어져 온 은사자상이 46세 임 씨에게 돌아간 것으로 인해 시상식장 안팎에서는 그의 수상이 이번 비엔날레의 최대 이변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철저히 ‘비주류’의 이야기를 도발적으로 조명한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임 씨의 수상은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다. 경원대 회화과를 졸업한 그는 “미술과 영화의 경계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경계 위에 스스로를 세운 자신만의 작업 스타일을 통해 서울대와 홍익대 출신이 대립적으로 주류를 양분한 한국 미술계에서 조금씩 입지를 다져 왔다.

“미술이 미술관 안에 갇힐 필요가 있을까. 물론 나도 ‘그런 미술’을 공부했기에 처음에는 생각이 많았다. 지금은 내가 하는 것이 미술인가, 영화인가, 또는 미술도 영화도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전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이 경계 위의 작업이 내가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라 믿는다. 하나의 역할모델을 만들고 싶다.”

‘위로공단’의 주인공도 현대사회의 비주류 인물들이다. 한국과 캄보디아, 베트남 공장과 마트에서 65명의 여성 노동자를 인터뷰해 엮었다. 1976년 동일방직 노동조합운동, 2007년 삼성 반도체 집단백혈병 사건 등이 실명으로 다뤄진다.

임 씨는 “불합리한 근무환경을 견디며 일한 한국 여공들의 아픈 ‘과거’는 동남아 이주노동자의 ‘현실’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 수상작인 영화 ‘위로공단’은 비인간적 환경과 처우로 인해 겪는 여성 노동자들의 고난을 서정적 상징과 함께 풀어냈다.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어머니께서 40년 넘게 봉제공장 작업조수 일을 했다. 지하 공간에서 계속 일하다 3년 전 대상포진에 걸려 그만뒀다. 영화 말미에 어머니 모습이 나온다. 여동생은 백화점 의류, 냉동식품 매장에서 오래 일했다. 두 사람의 삶이 내 작업에 시각을 부여했다. 노동자와 서민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이야기할 방법을 계속 고민해 왔다.”

사회의 치부에 대한 아픈 이야기지만 전반적으로 역설적인 서정미를 보여주는 바탕에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애잔함이 깔려 있다. 영화 속 이야기를 이미지로 요약한 짤막한 퍼포먼스 장면이 드문드문 삽입됐다. 폐결핵 이야기 위에는 땅에 떨어져 터진 앵두 알 이미지를 입혔다. 심사위원단은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보는 이가 무겁게만 느끼지 않도록 잘 중재해 표현했다”고 평했다.

임 씨는 “상 받은 기쁨보다 한국과 아시아 노동 현장의 여전한 문제에 대한 생각이 앞서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작품은 작가의 질문이다. 누군가의 노동이 자신의 삶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었다. 여성, 특히 경험이 많은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을 만나며 세상을 치유할 힘과 희망을 봤다. 사회의 여러 문제, 금기, 죽음에 대해 그들의 시선을 빌려 계속 이야기하려 한다.”

‘위로공단’에 이은 그의 신작 ‘Reincarnation(환생)’은 8월 24일까지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별관 PS1에서 공개된다. 베트남전쟁 때 파견됐다 돌아오지 못한 여성 무용수들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전시 황금사자상은 아르메니아가, 본전시 황금사자상은 미국의 에이드리언 파이퍼가 받았다.

베네치아=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