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에 붓 든 화가, 이시형 박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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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지인 20여명과 동양화 공부
그림에 산문엮어 책내고 전시회도

새로 배운 문인화로 책을 내고 전시회를 여는 이시형 박사.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새로 배운 문인화로 책을 내고 전시회를 여는 이시형 박사.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정신의학계 원로 이시형 박사(80·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이사장)는 팔순을 앞두고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죽기 전에 제일 못하는 걸 해보자.’ 오래 생각할 것도 없었다. 바로 그림이었다.

곧바로 주변 사람을 꼬드겼다. ‘초등학교 때 교실 뒷벽에 그림이 한 번도 붙어본 적 없는 사람 모여라!’ 그렇게 모인 스무 명가량이 지난해 4월부터 동양화가 김양수 화백에게 일주일에 한 차례씩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다들 그림은 젬병이라더니 사군자를 척척 그려냈다. 그의 난은 막대기처럼 뻣뻣하기만 했다. 그만두자니 실컷 바람 잡아 놓은 처지에 그럴 순 없었다. 그나마 그릴 수 있는 것은 산, 바위, 나무, 초가집 정도. 거기에 몇 자 글귀도 써넣었다. 스스로 형편없다 여겨 휴지통에 버린 그림을 김 화백은 한 장 한 장 주워 모았다.

그림을 그린 지 6개월째. 김 화백이 수업 시간에 그의 그림을 펼쳐놓고 말했다. “이 박사의 그림은 누가 봐도 엉터리지만 개성과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못 그린 그림이라도 할매의 찌개같이 구수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때부터 그림을 대하는 그의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오전 대여섯 시에 붓을 들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몰랐다. 마음은 편안하고 잡념이 사라졌다. 완전한 집중의 세계에 머물렀다. 화가인 김병종 서울대 교수는 그의 그림을 두고 ‘여든 소년의 작품’이라고 했다.

그의 문인화 124점을 짧은 산문과 함께 묶은 ‘여든 소년 산이 되다’(이지북)가 나왔다. 6월 4∼9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10길 경인미술관에서 같은 제목의 전시회도 연다. 14일 만난 이 박사는 웃으면서 말했다. “(내 그림이) 잘 그린 그림은 아니라꼬. 이게 어데 그림이가(그림이냐), 아이지(아니지).”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여든에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 문인화 그리기를 통해 누구나 명상의 시간을 갖고 치유의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는 거다. 책과 그림에서 나온 수익금은 그가 이끄는 ‘세로토닌 드럼클럽’의 해외 창단에 쓰려고 한다. 160개 중학교에 진출한 이 클럽은 우리 전통 북을 치는 청소년 정서순화 인성교육 프로그램이다. 그는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들에게도 북을 보낼 계획이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이시형#그림#김양수 화백#여든 소년 산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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