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외교전 진두지휘 해온 한덕수 주미대사 “한미관계 좋은게 당연하다는 생각은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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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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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배려해야”

16일 이명박 대통령 국빈방문 수행을 마치고 시카고에서 워싱턴 대사관저로 돌아온 한덕수 주미대사. 한미 FTA 미 의회 비준에서부터 국빈방문까지 숨 가쁘게 이어진 일정들을 마친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주미 대사 부임부터 FTA가 통과되기까지 2년 6개월간을 회상했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16일 이명박 대통령 국빈방문 수행을 마치고 시카고에서 워싱턴 대사관저로 돌아온 한덕수 주미대사. 한미 FTA 미 의회 비준에서부터 국빈방문까지 숨 가쁘게 이어진 일정들을 마친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주미 대사 부임부터 FTA가 통과되기까지 2년 6개월간을 회상했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지금 우리는 이거 못합니다.” 2009년 3월 주미대사로 갓 부임한 한덕수 대사가 미 의회를 찾았을 때였다. 찰스 랭걸 하원 세입위원장은 한 대사와 화기애애한 대화 도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얘기가 나오자 표정이 바뀌었다. 하원 세입위원장은 FTA 주무 소위원장이다. “정권이 바뀌었다. 미국 자동차 업계가 만족할 수준이 안 되면 우리 민주당 정부는 한미 FTA 못한다”는 그의 말에 한 대사는 높은 절벽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더구나 랭걸은 6·25전쟁 참전용사로 대표적인 친한파 인사다. 그런 랭걸마저 이 정도면 민주당의 다른 의원들 분위기는…. 그로부터 2년 6개월여가 지난 12일 한미 FTA는 압도적 지지 속에 미 의회의 비준을 받았다. 미 의회 역사상 의회에 넘어와서 통과되기까지 가장 짧은 시간이 걸린 FTA로 기록됐다. 워싱턴 의사당의 상전벽해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FTA 통과 외교전을 진두지휘한 한 대사를 16일 단독 인터뷰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빈방문 수행을 마치고 시카고에서 워싱턴으로 막 돌아온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지만 표정은 한층 홀가분해 보였다.》
―2009년 3월 주미대사로 부임했을 때 상황은 어땠나요.

“의회를 다녀보니까 절망적이었습니다. 아무리 홍보하고 아웃리치(outreach·외연 확대)를 해도 미국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미 행정부에서도 건강보험 개혁과 금융 개혁, 기후변화 협약 등 굵직굵직한 국내 현안 때문에 한미 FTA는 쳐다볼 겨를도 없었습니다.”

―부정적인 기류가 바뀐 전환점은 언제인가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 2009년 11월 이 대통령은 한미 FTA 문제를 통치권 차원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대통령이 ‘꼭 해야 한다’고 하자 오바마 대통령은 ‘내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솔직히 말해 내년 연말까지 해 보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노력한다는 것이지 의회에서 통과되도록 약속한 것은 아니었어요. FTA 내용을 수정해야 하고 수정된 안이 의회에서 통과될 수 있는 정치 환경인가도 중요한 변수였습니다. 당시엔 이 두 가지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지요. 2010년 6월 토론토 정상회의에서 같은 해 11월까지 모든 절차를 끝내자고 합의하고 그로부터 3주 뒤에 추가 협상을 타결하면서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한미 FTA를 반대했는데요.

“초기엔 그랬습니다만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면서 필요성을 절감한 듯합니다. 또 오바마 대통령의 자서전 ‘담대한 희망’을 보면 FTA를 반대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다만 노동, 환경, 의료 등에서 사회안전망을 갖춘 후 FTA가 이뤄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죠. 한미 FTA는 미국으로서도 1994년 비준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가장 큰 무역협정입니다. 내년 대선을 앞둔 오바마 대통령에게도 큰 정치적 자산이 될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말 추가협상에서 한국이 너무 많이 양보했다고 비판합니다.

“추가협상에서 자동차는 미국의 최대 관심사였습니다. 그 부분이 타결 안 되면 전체 협상이 타결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한미 FTA가 필요하다는 큰 틀에서 볼 때 자동차는 일부 양보가 불가피했습니다. 또 미국 내 한국자동차의 시장점유율은 2005년 4%에서 지난해 9∼10%로 두 배 이상으로 올랐습니다. 한국 차의 미국 내 시장점유율이 탄탄한 만큼 추가협상에서 다소 양보를 해도 큰 타격은 없을 것으로 봤습니다.”

―미 의회 인준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셨는데요.

“미 의회는 절차를 중요시합니다. 일단 절차에 합의하면 깨는 법이 없습니다. 깨질 만한 절차는 만들지도 않고요. 의원들은 절차에 따라 토론하고 투표를 통해 의사를 표명하며 결과에는 깨끗이 승복합니다. 미국은 절차적 민주주의에 강한 나라라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이제 한국 국회의 FTA 비준동의안 처리가 관심사입니다.

“궁극적으로 (비준안 통과로) 가게 될 것입니다. FTA는 한미동맹에 큰 기여를 할 것입니다. 5년 후 지금을 돌아봤을 때 ‘정말 FTA는 잘한 일이다’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한 대사는 13일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만찬 때도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미 FTA가 발효되고 나서 몇 년이 지난 후에 두 나라 경제에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됐는지를 연구해서 국민에게 적극 알려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FTA가 통과되는데 도움을 준 의원을 꼽을 수 있을까요.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그동안 찬성한다고 얘기한 적은 없지만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을 위해 절차를 빨리 밟을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와 존 베이너 하원의장, 데이브 캠프 하원 세입위원장, 샌디 레빈 하원 세입위 간사,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 등이 모두 도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역조정지원제도(TAA)가 엉키면서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초당적 합의에 따라 나중에 일사천리로 진행됐지요.”

―재미동포들의 풀뿌리 운동도 큰 주목을 받았는데요.

“250만 재미동포의 노력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겁니다. 의사, 변호사 등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언어 소통도 잘되는 동포들이 나서서 큰 도움이 됐습니다. 한인 동포들이 만든 풀뿌리 운동이라는 프레임워크가 앞으로도 활용될 곳이 많을 것입니다.”

―한미동맹에서 FTA 비준이 가지는 중요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한미관계는 좋은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자기만족이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국가관계는 개인관계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친한 사인데 왜 이런 일도 안 해 주느냐’고 서로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하면 동맹관계는 금방 금이 가게 됩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꾸준히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대통령의 국빈방문은 어떻게 이뤄진 건가요.

“1월부터 국빈방문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국빈방문이 성사될 줄은 나도 잘 몰랐습니다. 백악관 실무진에서 ‘어느 정도를 원하느냐’고 해서 ‘만찬은 풀 만찬으로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고위급 방문(high profile visit)으로 하자고 얘기가 오갔는데, 오바마 대통령이 공식 국빈방문으로 하자고 직접 결정했습니다.”

―시 경계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는 한국식당 우래옥에서 저녁식사를 함께한 것도 이례적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아이디어였습니다. 백악관이 나서서 친교모임을 갖자고 했고, 이 대통령은 미국 측에 맡기라고 했습니다. 저녁식사 장소 통보는 3시간 전에 왔습니다. 우리가 장소추천도 하지 않았는데, 백악관이 그만큼 우리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거지요.”

―두 대통령이 인간적으로도 매우 친한 것 같은데요.

“옆에서 지켜보니까 두 사람 모두 솔직하며 어려운 환경에서도 곧게 자랐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의회 연설에서 어릴 적 밥보다 물을 많이 먹었다고 얘기했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순탄치 못한 환경에서 자란 오바마 대통령은 이 대통령의 이런 점을 높이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양국 대통령이 디트로이트 GM 공장을 방문한 것도 아주 이례적입니다.

“앞으로 FTA가 잘 진전되려면 미국 자동차 업계의 지지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이번 국빈방문 준비 과정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디트로이트에 같이 가면 어떻겠느냐는 얘기가 나왔고, GM오리온 공장을 선택했습니다. 근로자가 1800명인 이 회사는 3년 전 회사 문을 닫을 처지였지만 한국GM이 미국GM에 투자해 살렸습니다. 한국 생산기술이 미국 자동차회사를 살린 사례인 거죠. 오바마 대통령은 디트로이트에 도착한 이 대통령에게 자신의 전용헬기인 ‘머린 원’을 타고 GM오리온 공장에 오도록 배려했습니다. 이 대통령이 머린 원을 타고 내리니까 오바마 대통령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더군요.”

이 대통령은 당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야구팀 모자를 쓰고 있었다. 이를 본 오바마 대통령은 “나는 화이트삭스 팬이라 그 모자를 쓸 수는 없다. 그래도 그 생각(지역 야구팀 모자를 쓸 생각)은 못했다. 당신이야말로 탁월한 정치지도자”라고 탄복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 방미 기간에 성 김 주한 미 대사 지명자의 인준안도 통과됐습니다.

“국빈만찬 때 존 케리 상원의원이 이 대통령에게 ‘지금 막 인준됐다. 대통령을 위한 선물’이라고 말하더군요.”

한 대사는 외국 인사들을 만날 때 부인이 직접 디자인한 넥타이를 선물하곤 한다.

“미 의원들이 부담 없이 받을 수 있는 선물로 여겨 좋아하더군요. 아내가 디자인했다고 하면 더 좋아합니다. 톰 리드 의원(공화·뉴욕)은 의회에서 FTA를 비준하는 날 나를 보더니 ‘당신이 선물한 넥타이를 매고 왔다’고 자랑하더군요.”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 “토끼는 풀밭이면 되지만 사자는 광야 필요” ▼
美의원 245명 488차례 만난 한대사

“토끼는 한 평 풀밭이 필요하지만 사자는 넓은 광야가 필요합니다.”

한덕수 주미 대사가 한미 FTA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다. 한국이 경제 영토를 넓히려면 풀밭을 넘어 광야로 가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가 한미 FTA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5년 재정경제부 장관 때부터다.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낸 한 대사의 인생은 통상, 무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노무현 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그가 이명박 정부에서 주미대사로 발탁된 것도 한미 FTA를 매듭지을 적임자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 경제부총리에서 물러난 후 대통령직속 한미FTA체결위원회 위원장 겸 대통령 한미 FTA특보를 지냈다. 이어 총리로 임명된 후 FTA가 타결됐고 2007년 6월 말 직접 사인을 했다.

한 대사는 2009년 3월 부임 후 미 의회에 살다시피 했다. 그동안 만난 하원의원은 245명, 횟수로 따지면 488번이다. 부임 초기 워낙 많은 의원을 찾아다니니까 의회 관계자들 사이에서 기네스북감이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 의회가 문을 닫는 휴회기간에는 31개 주 57개 도시를 돌면서 지역구에서 의원들을 직접 만났다. 이코노미석밖에 없는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외진 도시까지 구석구석 누비고 다녔다.

“도시를 찾을 때마다 업계 인사 200∼300명을 대상으로 FTA 비준의 필요성을 얘기하고 언론사들을 상대로 설득 작업을 했습니다. 노조가 강한 디트로이트 같은 도시에 가면 반응이 싸늘했죠. 그래도 부딪혔습니다.”

그 같은 성실성은 워싱턴 외교가와 의회에서도 유명하다. 13일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만찬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의 조그만 방에서 윌리엄 데일리 비서실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한 대사를 발견하고 다가와 “당신이 이번에 (한미 FTA를) 통과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잘 알고 있다”며 격려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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