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은 소수자 보호 고뇌하는 자리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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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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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대법관 임기 마쳐 “사회에 기여할 일 찾을것”

국내 최초의 여성 대법관인 김영란 대법관(오른쪽)이 24일 6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이날 퇴임식 후 기념촬영을 하면서 이용훈 대법원장과 나란히 앉아 있는 김대법관.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국내 최초의 여성 대법관인 김영란 대법관(오른쪽)이 24일 6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이날 퇴임식 후 기념촬영을 하면서 이용훈 대법원장과 나란히 앉아 있는 김대법관.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제가 경험한 대법관은 출세의 자리도 법관의 승진 자리도 아니었습니다.”

국내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서 6년 임기를 마친 김영란 대법관(54·사법시험 20회)은 24일 법복을 벗으며 이같이 소회를 밝혔다. 그는 “대법관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고 거기에서 바람직한 최선의 길을 찾는 고뇌의 자리였다”며 “대법원은 그런 대법원이 돼야 한다고 지금도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 대법관은 그동안 전원합의체 판결 83건에서 14차례에 걸쳐 반대 의견을 내는 등 소수자의 입장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여성에게 종중원 자격을 주지 않는 관습법이 잘못됐다는 판결, 학교의 종교행사 참여 강요가 학생의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본 ‘강의석 군 판결’과 성 전환자의 호적상 성별을 수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소수 의견을 낸 일 등은 모두 사회적으로 논란이 뜨거웠던 사건이었다. 또 세 차례에 걸쳐 사형선고를 내리고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서 유죄 판결을 하는 등 자신의 개인적 소신과 법관의 직업적 양심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김 대법관은 이날 퇴임사에서도 “사법부가 선출직이 아닌 이유는 다수결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다수자의 권리를 확인하는 일에서 사법부의 존재 근거를 찾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김 대법관은 대전고법 부장판사로 근무하던 2004년 대법관 후보자로 추천돼 인사검증 차원에서 신상정보 조회 동의 요구를 받자 거부의사를 밝혔을 정도로 “대법관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일이 없다”고 한다. 법원행정처는 당시 “아직 제청도 안 했는데 거부를 하느냐”고 설득해 거부의사 철회를 받아냈다. 김 대법관은 이후 ‘대법관으로 임명 제청됐으니 상경하라’는 전화 연락을 받고도 “오늘은 재판이 있는 날이라 재판을 해야 한다”고 답하는 등 우직한 면모를 보여 법원 내에서 화제가 됐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경우 높은 ‘몸값’ 때문에 적지 않은 수입을 올릴 수 있지만 김 대법관은 법복을 벗은 이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을 계획이다. 이는 자신의 ‘오래된 생각’이라고 한다. 그는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30년 가까운 법관 경력을 살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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