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차이콥스키홀, 한복이 수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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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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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러 수교 20주년 기념
성신여대 한복패션쇼 열어
음악 이외 공연 세계 첫 허용

2일 한-러 수교 20주년을 기념해 러시아 모스크바에 위치한 차이콥스키홀에서 한복 패션쇼와 성신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회가 열렸다. 이 행사를 진행한 서울 성신여대 학생들이 스스로 디자인한 퓨전 스타일의 창작 한복을 선보였다. 사진 제공 성신여대
2일 한-러 수교 20주년을 기념해 러시아 모스크바에 위치한 차이콥스키홀에서 한복 패션쇼와 성신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회가 열렸다. 이 행사를 진행한 서울 성신여대 학생들이 스스로 디자인한 퓨전 스타일의 창작 한복을 선보였다. 사진 제공 성신여대
지난달 31일 오후 9시 반(현지 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세레메체보 공항. 앳된 얼굴의 한국 여대생 139명이 대형 상자 49개와 함께 입국 수속을 마쳤다. 철저하게 감춰져 있던 상자 속 내용물의 정체는 이틀 뒤인 2일 모스크바 차이콥스키홀에서 밝혀졌다. 한-러 수교 20주년을 기념하는 한복 패션쇼와 성신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위해 이곳을 찾은 서울 성신여대 학생들이 가져온 의상과 악기들이었다.

○ 세계 최초로 차이콥스키홀에서 패션쇼

1930년 세워진 차이콥스키홀은 ‘모스크바필하모닉’이 상주하는 러시아의 대표 공연장. 콘서트 전용 홀이어서 그동안 철저하게 음악 공연 위주로 사용돼 왔지만 80년 만에 처음으로 성신여대에 음악 이외의 공연 무대를 허용했다.

성신여대 학생들이 멀리 모스크바에서 공연을 펼친 것은 지난해 9월 세계적 명문 음악대학인 차이콥스키 음악원과 학생·교수 교환 및 공동문화 프로그램 진행 등을 위한 교류협력 계약을 체결한 게 계기가 됐다. 이번 공연은 두 학교 간 협력의 첫 결실. 의미 있는 공연을 앞두고 의류학과와 기악과, 스포츠레저학과 학생 및 교수들은 방학을 몽땅 반납했다. 심화진 총장은 공연을 무사히 성사시키기 위해 모스크바를 4차례나 찾았다.

공연 당일인 2일 차이콥스키홀에는 공연 시작 한 시간 전부터 많은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학교 측과 대사관, 한국 기업들의 홍보 덕분에 고려인과 러시아인이 발코니석까지 1500여 석을 꽉 채웠다. 오후 7시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징소리가 울리고 쪽 찐 머리에 한복을 입은 러시아 모델들이 등장했다. 이번 런웨이에는 학생들이 디자인한 퓨전 스타일의 창작 한복을 비롯해 150여 벌이 올랐다. 계층별 전통복식을 각각 스토리텔링 형태의 퍼포먼스로 선보여 러시아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공연장을 찾은 예카테리나 포홀코바 모스크바 시립 외국어대 교수는 “한국 비단 특유의 색감과 여성 모델들의 머리 스타일이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 음악 본고장에서 선보인 오케스트라

‘전통’이라는 무기를 앞세울 수 있는 패션 분야와 달리 음악의 본고장에서 실력을 선보여야 하는 성신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부담감은 컸다. 학부생으로만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수준 높은 러시아인들의 기대치를 만족시킬 수 있겠냐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이날 지휘를 맡은 김종덕 교수(기악과)는 “나무 소재로 정교하게 지어진 차이콥스키홀은 조금만 소리가 틀려도 확연하게 티가 난다”며 “다행히 젊은 학생들이라 그런지 긴장도 안 하고 여유 있게 연습했다”고 말했다. 공연은 모든 우려를 뒤로한 채 성황리에 끝났다. 음대 교수들과의 협연으로 진행된 ‘아리랑’과 ‘청산에 살리라’ 무대를 비롯해 장구와 함께 ‘경복궁 타령’을 공연한 것이 주효했다. 웃음에 인색하기로 유명한 러시아인들도 무대가 끝날 때마다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공연을 지켜본 안드레이 셰르바크 차이콥스키 재단 이사장은 “처음 접하는 한국 문화인데 기대했던 것 이상이어서 놀랍다”고 소감을 밝혔다.

모스크바=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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