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다시 오겠다는 말은 누군가엔 희망이자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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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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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인 그 약속 지켰지요”
고교 3년간 1345시간 봉사 ‘대한민국 인재상’ 최아름 양

전남 나주시 ‘부활의 집’에서 이·미용 봉사를 마친 최아름 양(왼쪽에서 두 번째) 가족. 가운데가 어머니 전종숙 씨, 왼쪽은 동생 아현 양, 오른쪽은 둘째 언니 아라 씨. 사진 제공 최아름 양
전남 나주시 ‘부활의 집’에서 이·미용 봉사를 마친 최아름 양(왼쪽에서 두 번째) 가족. 가운데가 어머니 전종숙 씨, 왼쪽은 동생 아현 양, 오른쪽은 둘째 언니 아라 씨. 사진 제공 최아름 양
“사람들이 한번 봉사활동을 가면 다음에 꼭 또 온다고 해요. 사람들은 예의상 하는 말이지만 그 말이 희망, 그리움을 줘요. 봉사하러 가서 ‘지난번 그 언니 왜 안 와?’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파요. 저라도 그 약속을 꼭 지키려고 노력했을 뿐이에요.”

최아름 양(18·광주여상 3년)은 주변에서 커다란 보살핌을 받으며 컸다. 밑반찬 몇 가지를 들고 가면 할머니는 고이 아껴둔 요구르트를 손에 꼭 쥐여줬고, 유치원 때부터 사귄 친구는 지금도 자기 먹을 간식을 아꼈다 몰래 내준다. 다문화가정 어린이에게도 최 양은 인기 만점이다. 자폐증이 심해 제대로 말하기 어려운 오빠도 ‘아름아, 아름아’ 하고 또박또박 이름을 불러준다.

“유치원 때 나주에서 알게 된 한 살 어린 동생이 있어요. 저랑 친동생은 다 자라서 곧 어른이 되는데 그 친구는 아직도 기어 다니는 거예요. 갈 때마다 동생이랑 걸음마 연습을 시켜줬어요. 이제는 손을 잡아주면 혼자서도 걸을 수 있어요. 정말 근사하죠?”

최 양 목소리 앞에서는 ‘구김살’이라는 낱말이 뜻을 잃는다. 하지만 21일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최 양에게 ‘2009 대한민국 인재상’을 준 이유에는 ‘가정 형편이 어렵다’는 표현이 들어 있다. “외환위기 때 아버지 사업이 기울어 집이 많이 어려웠어요. 집에 사채업자도 많이 찾아오고…. 그때 어머니가 딸 넷을 데리고 봉사활동을 다니기 시작하셨어요. 어머니는 처녀 때부터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셨거든요. 남들이 웃는 모습을 보면 희망이 샘솟는다고 하시더라고요.”

최 양 가족은 여전히 아버지와 따로 산다. 광주여상 이현종 교감은 “가정 형편이 좋은 편이 아닌데 똘똘 뭉쳐 봉사활동하는 것으로 서로 위로하면서 사는 가족”이라고 말했다. 최 양은 고등학교 때만 봉사활동으로 1345시간을 보냈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봉사활동 시간을 적어 내라고 하더라고요. 어머니한테 가서 봉사활동이 뭐냐고 물었더니 ‘우리가 하고 있는 게 봉사활동이야’ 하시더라고요. 여태 얼마나 했냐고요? 한 8000시간?”

최 양 가족에게 봉사활동은 가족 여행이었다. 집 근처에서 처음 시작한 봉사활동은 곧 전국 곳곳으로 번졌다. 구석구석 어려운 이들을 찾아 베풀며 살겠다는 뜻이었다. 어느 곳을 방문해 어떤 활동을 했는지 기록한 포트폴리오는 가족 앨범이 됐다. “반찬 배달을 해드리던 홀몸노인이 우리가 모르는 새 돌아가셨어요. 여러 곳에 다니느라 자주 찾아뵙지 못했는데 소식을 듣고 나니 참 죄송스럽더라고요. 그 다음부터 조금 더 자주 들를 수 있는 곳을 다니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가족끼리 뜻을 모았어요.”

최 양은 올해 입시에서 헝가리 국립의대에 합격했지만 진학을 포기했다. “처음에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갈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대신 기독간호대학에 가기로 했어요. 간호사로 몇 년 일해서 돈 번 다음에 꼭 의대생이 될 거예요. 이렇게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실력을 갖춰 갚아야죠.”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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